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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저녁 SE>
김정환
태양을 거세당한 극장
나는 무대 위에 뿌리 내린 한 그루 저녁이 되었다.
서로의 사타구니를 쓰다듬는 관객들 앞에서
부릅뜬 조명에 의해 곱게 박제되어 있는 것.
방백도 독백도 모든 대사가 다 끝났는데
일렁이는 이곳을 내려갈 수가 없다.
누군가는 나를 봐주리라는 생각인가.
저기 극장을 나서는 연인의 권태 정도는
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해 줄 것인가.
가지를 구부려 밑동의 여명을 잘라내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오직 무위(無爲) 뿐이니
저 태양 같은 걸 직시하여 내 눈을 태우리
찢어진 시간의 틈으로 눈부신 저녁이 흘러들어왔고
벙어리 별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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