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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12

[시쓰기]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김정환 최초의 기억은 네 살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출생 전날 나는 대체 몇 병이나 마셨던 걸까어머니 뱃속 어디에 그 많은 술이 있었나유년시절에서 그 이야기만 쏙 빼주신 부모님의 배려란. 사랑하는 당신이 서운함이라고 써내놓은 것들왜 이렇게 생소하게 보이는 걸까이제야 좀 눈에 익어가는구만고장 난 카메라 같은 내 얼굴 앞에서당신은 그만 한숨을 푹 내쉰다. 오랜 추억을 돌아 나오는 길끝까지 붙잡지 못하고결국 마지막에 기억을 놓쳐버린 이는아마도 남들보다 유난히 많은 기억을 짊어져야 했던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배웅해야 하는 날우리는 기억할 수 없는 시간도 함께 떠나보내지만그들을 닮은 또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면서마침내 조금씩 갚아나가게 된다.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2013. 11. 27.
[시쓰기]"부질없다"는 한탄의 상대적임이 가진 절대성에 괴로워 한 적이 아마도 있었을 법도 하지만 아닌 것도 같은 어느 물괴기(활어)의 밤 "부질없다"는 한탄의 상대적임이 가진 절대성에 괴로워 한 적이 아마도 있었을 법도 하지만 아닌 것도 같은 어느 물괴기(활어)의 밤 심연의 바다 속에서 내려다 보는 하늘은 해발 0.1mm의 아찔함이다 기억을 물들이는 피멍처럼 시퍼렇고, 화끈했지 싶은 사랑처럼 눈부시지 투명한 별빛에 아리도록 빽빽한거야 그곳을 나는 늘 등져 버릇했다 "어차피 밤이 되면 존재하지 않는다!" 하늘도 별도 나도 너도 하얗게 지새운 어제와 오늘 사이처럼 하악하악 나는 부레로 외쳤고 기나긴 밤의 해저를 기어다니며 보글보글 나는 아가미로 울었다. 하늘도 별도 나도 너도 사랑도 추억도 시작도 끝도 사라지질 않았다 잠들지를 않았다 2013. 11. 26.
[시쓰기]아침고향 아침고향 아침 일찍 일어났다 너무 오랜만이라 고향에 돌아온 것 같았다 고향과 정오 고향과 오후 고향과 저녁 아침에 서있다는 건 흐르는 강과 눈을 맞추는 일이고 그리움의 여유를 갖는 일이며 다가올 저녁과 싸울 힘을 모으는 일이다 세 끼를 꼭꼭 씹어 밥에 새긴 내 잇자국을 삼켜 어두워지는 순간의 틈새와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시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2013. 11. 26.
[결혼식 축시]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전야(前夜)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전야(前夜) 해가 길어졌어 덕분에 저녁을 먹고 나면 바람을 따라가는 파란 하늘과 작별할 짬이 난다 그렇게 천천히 마주하는 오늘의 전야(前夜), 어느새 하늘이 떠난 버거운 공간을 목 굽은 가로등이 힘겹게 이고있다 이 전야(前夜)의 그 어디에 우리의 초면(初面)이 남아있을까 하여 저 멀리 걸어가는 철없는 그림자를 나는 멀고먼 마음으로 갈무리 한다 지나가버린 것들의 뒤켠에서 멀어져가는 시절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큰 즐거움이었고 바라지 않아도 흘러가는 시간은 어쩌면 화석이 될 우리의 꿈일 것이다 결국 이렇게 우리 모두에게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전야(前夜), 두 사람의 새로운 꿈이 시작되는 날의 전야(前夜)다. 201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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