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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독후감

by 통합메일 201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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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독후감

 

 

독후감의 소재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한 번 읽어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알량하지만, 수두룩하게 열거된 책들 중에서 마지막 마침표를 만나본 책의 제목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을 읽어보고, 그 책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볼드(Bold)효과 같은 게 있었던 기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복기 정도나 하려고 책을 펼쳐 든 순간 나는 나의 판단이 어딘가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점을 즉각적으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읽었던 책인데. 그때의 독서와 지금의 독서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격차는 나로 하여금,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같은 책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두 번째 읽는 것이니 수월하게 읽히기라도 하겠지. 그런 생각으로 애써 황망함을 타일렀지만, 오히려 처음 읽을 때보다 더욱 힘겹게 더듬더듬 읽어 나가는 스스로의 일관성을 목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에 앞서, 독서라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그 많은 생각들을 추슬러 얻은 어렴풋한 결론은, 시간의 격차로부터 유래하는, 나의 내면의 그 무엇이 포함하는 단절이 바로 이 생경함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그곳에 가만히 있었건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같은 풍경을 동일하게 볼 수 없는 필연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좀 더 차분하게, 하지만 오히려 더 절실하게 바라보게 되는.

 

이 책은 『지구영웅전설』(2003), 『카스테라』(2005), 『핑퐁』(2006),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 『더블』(2010)의 작가 박민규의 첫 소설이자, 첫 장편소설로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한 남성이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야구팀을 화두로 하여 이야기 해나가고 있다.

 

야구에 대해 문외한인지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이야기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이 팀은 무척 ‘평범한 야구를 했던 팀’이었다. 오히려 이상했던 것은 이 팀이 아니라,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고, ‘혹독한’ 기준을 스스로와 동료에게 강요했던 사람들로 채워진 이 세상이었다.

 

작가, 혹은 주인공 화자의 마음은 이 평범함과, 프로라는 명사로 대변되는 완벽함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장한다. 집안의 기대를 받으며 중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나가 교복을 맞춰준다. 고급 엘리트 학생복지를 쓴 교복이었다. 반드시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 초라한 횟집이 송구스러워 할만큼 진지한 말투로 아버지는 소년에게 꾹꾹 눌러 쓴 대사를 건넨다. 돌아보면 그것은 결국 아닌 프로가 되라는 말에 다름 아니었고 거짓말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한민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하게 되면서 바야흐로

 

프로의 시대가 열렸다.

 

자연스럽게, 지역 사람들과 함께, 교우들과 함께, 소년은 연고팀 삼미슈퍼스타즈를 응원하게 된다. 첫 경기를 앞두고 사람들 사이의 화제는 언제나 삼미슈퍼스타즈의 우승 일변도였고, 소년들은 야구장으로 뛰어가 손에 쥐어든 오천원을 내고 삼미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팬클럽 회원 자격을 얻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본능적으로 추구했던 프로에의 의지였을 것이고, 나아가면 생존에의, 삶에의 의지였을 것이다. 시대는 아무 말 않으면서도, 프로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아주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삼미슈퍼스타즈의 이야기로 저녁 밤 하늘 아래를 채우고,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 되면서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본디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것. 프로의 세계는 5천 원짜리 어린이 팬클럽 회원권 따위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삼미는 전혀 프로답지 않은 모습을 이어 나갔다. 83년도에 깜짝 연승 행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다시 그들을 기대에 차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였을 뿐, 그들은 다시 본래의 모습, 누구보다도 평범한 야구를 하는 그들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실망했고, 다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좌절과 패배감에 빠져들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언뜻,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이유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버지로부터 일장 연설을 들으면서 소년이 했던 생각은 몇 번의 좌절과 극복만 가지고 졸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의 힘으로 따라잡기엔, 세상은 슈퍼맨처럼 빠른 속도로 프로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속도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였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급류에 몸을 맡긴 채 저 멀리서 전설처럼 빛나고 있는 크립톤 행성, 즉 진정한 프로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 뿐이었다.

 

세상을 휩쓴 프로의 바람은, 평범한 것의 기준을 바꿔 놓았고, 부러운 것과 부끄러운 것의 기준을 바꿔 놓았다.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을 깨달은 소년은 프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소속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계급을 바꾸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길을 선택하고 마침내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는 결국 진정한 프로는 될 수 없는 팔자였는지, 그만 운 나쁘게도 세상의 부조리를 목격해 버린다. 합리와 비합리가 제자리를 잃고 부유하는 세상의 정물을 목도하면서 그는 조금 어지러웠을 것이다. 속된 말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문득 만난 첫사랑. 누군가가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로부터 가장 아름답게 인식될 때일 것이다. 그렇게 인식되는 그 누군가를 그는 만났다. 하지만 프로의 세상과 싸우다 지쳐버린 그녀는 결국 프로의 세계에 순응하고 그의 곁을 떠나갔다. 끝까지 삼미 슈퍼스타즈를 향한 믿음을 견지하던 친구 역시도 그의 곁을 떠났고, 동시에 그의 청춘이 지나가버렸다. 지금까지의 삶은 그래도 안간힘을 써서 버텨왔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쏜살같은 속도로 그는 프로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어느새 중년이 된다.

 

가뜩이나 끝이 보이지 않는 프로의 세계였다. 프로의 세계에서 인간이 견지해야 할 노력에는 끝이 없었고, 짊어져야 할 책임에도 끝이 없었으며, 겪어야할 고난과 시련에도 끝이 없었다. 제정신을 가지고는 좀처럼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 비틀거리는 사람들로 거리는 때로 붐볐다. 그런 상황에서도 프로의 세계는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그들의 턱 밑에 IMF라는 선물을 들이댄다. 이를테면,

 

“이거 왜 이래 다 아는 사람끼리”

 

라는 기분으로.

 

한 대, 두 대, 세 대. 거기까지였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이라는, 프로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건만, 어엿한 중년으로 늙어버린 소년은 결국 진정한 프로가 되지 못한 패배자로 전락해 버렸다. 실직, 아내와의 이혼, 재취업의 희망은 요원하고. 지금까지의 좌절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듯 깊고 깊은 수렁의 모습을 한 좌절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좌절의 끝에서 그는 다시 삼미 슈퍼스타즈를 만나게 된다. 지나친 작위성은 작가에 대한 실망을 불러일으킬만 한 것이었지만, 그것이야 어찌됐든 간에 그를 향해 돌아온 옛 벗과 함께 그는 삼미슈퍼스타즈의 옛 정신을 부활시키는 일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이 세상을 다시 재구성하는 수준의 일이었다. 노아가 방주에 담을 만물의 종(種)을 찾듯이, 그들은 삼미슈퍼스타즈의 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관점의 전환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일상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모종의 자기계발서적들을 떠올리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관점의 전화이 지향하는 바는 우리가 흔히 접해왔던 것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자기계발서들이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계발과, 인내를 강조했다면, 삼미슈퍼스타즈의 야구가 추구하는 곳에는

 

‘쉼’이 있었다.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삶. 당연한 듯 보이지만,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그 누구도 당연하게 영위하고 있지 못한 그런 삶이 바로 삼미슈퍼스타즈의 야구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설득의 변화구라는 생각이다.

 

‘시간은 원래 넘쳐 흐르는 것,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다. 알고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이쯤에서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내가 느꼈던 감정과 조우할 수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온천수 같은 것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내는 기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잠시나마 매우 상기됐던 것 같고, 또 그래서 머지않아 이내 식어버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채였고, 별로 크지도 않은 내 두 발을 둘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불안

 

프로의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존, 행복, 사랑, 생활, 생식. 인간이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는 그 모든 것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데 엉켜 뭐라 추스릴 수 없는 거대한 감정으로 방향성도 없이 우리의 삶에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되는 과욕, 허영, 질투, 시기 등의 감정이 바야흐로 프로의 시대를 탄생시키게 되는 것일 테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으로도 정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정성어릴 어느 작가의 메시지로도 쉽게 극복될 수 없는.

 

그래서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로부터 적잖이 떨어져 있는 나는 또다시 그의 조언에 설레길 주저하고 있다. 감언이설,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닐까. 그의 설득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현명한 선택은 못하더라도 바보 같은 선택은 피하는 것이 나의 최선은 아닐까. 그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홈런을 쳤다.

 

그런데 홈런의 주인공을 환호하기는커녕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성의 없이 베이스를 돌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있었다.

 

‘마치 재구성된 지구의 대륙처럼

그 봄의 홈그라운드는 텅 비어 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무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두근두근했다.‘

 

그래, 두근두근했다. 어이없게도. 다 식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가슴이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야구이건만, 초라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 심장을 가진 존재로서, 미래를 가리키며 불투명한 저것이 싫다고, 두렵다고 외치는 일은 초라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삶이란, 미래란 원래부터 불투명한 것이고, 그래서 심장이 뛰는 존재로서의 우리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투명하게 미리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얼 해도 좋을 것만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가진 본질인 것이다. 그 누군가가, 혹은 우리 스스로가 짜놓은 프로의 세계에서, 촘촘한 일상의 올에 가려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은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공을 던지고, 때로는 배트를 들고, 지치면 편히 쉬리라. 그리고 또다시 좌절에 빠질 땐,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뛰지 않는 심장이 의심될 땐, 이따금 삼미 슈퍼스타즈를 기억하리라. 울고 웃으며, 또 때론 쉬며, 그렇게 평범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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