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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비명 지르는 미래 (직업과 명분)

by 통합메일 201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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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지르는 미래 (직업과 명분)


어릴 적부터, 상상을 시도하면 곧잘 들을 수 있는 비명이 있었다. 나는 내가 그 비명소리를 이전에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실로 나에게 기이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가고 이제는 그 소리가 아마도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즈음에는 이미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제법 자유롭고 행복한 시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문득 그 소리의 경험을 떠올렸고, 새로운 음색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한 분노가 미래를 향해 예약해 놓은 소리였다. 믿을 수 없게도 어머니는 내가 어떤 공무원이라도 된다면 당신을 원망할 일이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그런 생각, 그리고 그 뒤에 위치한 가치관이 더욱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런 식으로 나아간 미래라는 것은 온통 비명소리로만 가득찬 것에 다름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향해 모든 것을 때려 부수며 내지르는 비명이 나의 귓전을 미리 울렸다. 생각할수록 그 상이 또렷하여 나는 슬펐다.

직업에서 일에서 오늘날의 부모들이 자식을 고려할 때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명분이라는 게 아닐까 한다. 명분이 중요하다. 돈이 다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돈이 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나는 그들에 대하여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우월감을 느껴 때로는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기도 하지만 처지가 이렇게 되어버리니 아무래도 그들이 부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같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다고들 하지만, 지금껏 내가 그들을 바라본 경멸의 눈초리는 단순히 그렇게 쉽게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이를 조롱하고, 유린하고자 하던 의지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꺾여버릴 때는 잔인하고도 끔찍한 그 무엇이 나오기는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그래서 나는 내가 두렵다. 이런 식으로 억압되는 내가. 나의 정신이 극단으로 치닫는데 어머니는 그걸 상상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잘못하면 사람을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저 나의 마음이 더 이상 크게 다쳐버리면 정말로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고 에둘러 경고할 뿐이다. 하기사 기실 어떻게 얘기하든 간에 어머니는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꿈도, 나의 현실도.

그리하여 결국 이렇게 되면 나는 커다란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되는 게 거의 확실시되는 것 같다. 한쪽에는 문학에 대한 꿈과 명분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종족 번식의 본능 같은 것이 있다. 어떤 것을 포기하든, 내가 스스로의 존재를 없애지 못하는 이상 결국 그 부재로 인한 분노에 비명을 질러야 하겠지만, 지금 생각하기로는 처자식을 만들어 나의 분노의 희생양이 되도록 하기 보다는 그냥 처자식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 공허의 문장들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것이 역시 훨씬 깨끗하고 이타적이며 배려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30709 “엄마, 마음이 이렇게나 다쳤는데 무슨 공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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