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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니까요

by 통합메일 201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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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신 마음의 문제니까요


고마움도 원한도 오래 가지 못한다. 나는 그런 법칙이 통용되는 세상을 살아가며 나 역시도 그러한 마음이 탑재된 인간이다. 굳이 말해야 뭐하겠냐마는 나는 고마움의 맹약을 믿지 않는다. 내가 베푼 은혜에 대한 누군가의 호언장담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그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가족들로부터는 너무 무르다는 소리를 듣는 인간이 되었다. 아마 그것은 내가 의를 믿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의라 함은 나의 정명에 기대어 어떤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나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명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명분은 참으로 중요하다.

원한도 오래 가지 못하는데 사실은 이게 더 큰 해악을 낳는다. 잊히지 않는 원한은 복수에 대한 욕구, 즉 오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낳는데, 원한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오기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제 동생은 내가 베푼 존중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너뜨리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매우 화가 났지만 그 모든 게 알아서 잠잠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출하지 않았다. 나아가 나는 그 분노의 감정뿐만 아니라 원한의 기억마저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깨달음에 어쩐지 나는 슬퍼졌다. 궁극적으로 나를 외톨이로 만드는 것은 그런 나의 변덕, 즉 내가 영원히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글에 대한 나의 의지로도 이어진다. 엄마가 나를 궁지로 몰면 일단 그 때는 글에의 의지가 범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그것이 그 의지가 말라버리는 것이다. 이유야 뻔하다. 내가 생각을 해도 글에 올인을 하는 것보다는 돈 쉽게 버는 공무원을 하는 것도 더 좋은 것이다. 문학에 대한 나의 의지가 나의 호언장담만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상태에서도 나의 주업이 글쓰기라고 결정된다면 그래서 내가 자기검열이나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그것에 매진할 수 있다면 나는 또 내 잘난 맛에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지금으로써는 그저 요원할 따름이니 답답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상태가 답답하고 비겁하고 창피하다. 글 쓴다고 큰소리만 치고 망가져버린 이들의 뒤를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음도 없는 공직에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없다. 심지어는 나의 소망대로 널리 인간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교단에 서는 것보다는 책을 통하는 편이 좋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 그것뿐이다. 나의 마음이 그러할 뿐이다.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의 감정에는 노이즈가 너무 많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과 무한의 자기검열을 나는 마주한다. 과연 나는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나의 마음의 문제이니 결국에는 나의 마음을 원망해야 하는가.

나는 왜 마음 같은 것을 달고 태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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