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리 철학

마음속에 벌레가 산다

by 통합메일 2013. 9. 30.
반응형

마음속에 벌레가 산다.


마음속에 벌레가 산다.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알 수도 없는데 덕분에 나의 마음은 한시도 편히 잠들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슬픈 것은 그러한 욕망의 벌레 때문에 그나마 나의 삶이 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더 나아가 이제는 나라는 존재 안에 벌레가 들어있는 것인지, 아니면 혹 나라는 존재는 무고한 누군가의 몸 안에 깃든 벌레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비가 인간의 꿈을 꾸듯이 벌레가 인간의 탈을 쓰고서는 자신의 몸 안에 벌레 들어있다며 겸손하려는 태도로 한탄하는 모습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 그러한 경우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제법 혹은 절대적으로 일반적인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범인들 사이에서 논의되는 도덕성의 알량함이 당장에 그 형체를 뚜렷히 드러내는 것이고, 태초부터 부지런히 혐오의 대상과 악의 주체를 창조하여 그것을 타자화 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신의 그것으로 근접시켜 갔던 인간들의 역사가 고발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마당에 던져진 인간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벌레를 타자화 시키고, 스스로를 벌레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탄압함으로써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보장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벌레에 대한 정의에 수정을 가하는 길이다. 기존에 부여된 혐오의 굴레를 제거하고 수용 가능한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벌레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그 지위를 선방할 수 있는 길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벌레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로인해 그동안 자신이 혐오해왔던 대상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는 길이다. 여기서 다시 두 개의 경우가 파생될 수 있는데, 하나는 그야말로 절망하여 파멸의 길로 치닫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절망을 계기고, 하지만 그러한 절망을 초월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자기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통해 세계 역시도 새롭게 인식해내는 방법이다.

대저, 내가 이해하고 추종하는 실존의 길이라는 것이 이와 다르지 않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