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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진영논리에 매몰된 이들과의 논쟁이 무의미한 이유

by 통합메일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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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논쟁은 그 기준을 진리성에 위치시킨다. 제대로된 논쟁이라면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의 관심은 승패에 놓이지 않는다. 때문에 과연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열린 자세로 접근하는 으지를 보인다. 하지만 진영논리에 빠진 이들의 경우에는 큰 틀에서 답을 정하고 접근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자신은 이미 정답을 확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떻게 됐든 모든 근거와 논리를 자신의 지지에 유리한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무엇을 보여주든 간에 그는 자신이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며,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 보면,, [확인]이 아닐까. 자신은 답을 이미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이 그 정도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건 아무것도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얻은 답이라는 것은 오직 진영논리 안에서만 유효하다. 다시 말해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저쪽 보다는 내가 더 옳다는 것에 달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진영논리에 매몰된 읻르은 그 매몰의 정도에 비례해서 역정을 낸다.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늘 마주하는 벽이다. 아주 옛날이지만 그때는 이 벽이 이리도 부숴지지 않고 오히려 두꺼워지기만 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영논리에 매몰된 이들 못지 않게 그러한 이분법을 초월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들도 적잖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만간 의미없는 논쟁은 종식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무의미하고 피곤하기만 한 풍경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각자가 지키고 있는 진영을 비워버리면 지금까지 싸워온 증오하는 상대방이 흐름을 장악하게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한 비연속적 도약은 결국 누군가에게 내가 결코 원치 않는 반사이익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들에게 공론장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열러둔 채로 진리를 향한 탐구를 경주하는 장소라기보다는, 경쟁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위세를 뽐내고, 동지를 모집하기 위한 경연장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소에 가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합리적 논박과 논쟁을 시도하는 것은 그러한 공론장을 점거하고 있는 이들에게 상당한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중요한 것은 내가 맞서 싸우고 있는 악인들이 득세하지 못하도록 합리성과 합당성의 차원에서 <비교 우위>에 서는 것인데, 갑자기 그들에게 참된 진리를 바탕으로 하는 절대적으로 보편적인 합리적임과 합당함에 대해 논하게 되어버리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애써 고수해 온 비교우위의 전선이 무너지고, ㅎ바리성과 도덕성의 측면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전락하게 됨에 따라, 자신들이 그토록 싫어해마지 않는, 상대방이 잘 되는 꼴을 봐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그러한 논쟁이 달갑게 느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정과 공론장의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거기에 들어가서 뭔가 합리적 대화와 논박을 시도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다. 비합리 그 자체다.이의를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가볍게 문을 노크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충차로 문을 부수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영이 없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자 하는 이들은 주인이 이미 점거하고 있는 곳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자신만의 일기장을 만들거나 아니면 좀 더 건전하고 수준 높은 공론장을 새롭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음 일어날 일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관심 갖는 이들을 찾지 못해 그냥 파리만 날리는 공간으로 방치되거나, 또 다시 진영논리에 매몰된 이들에게 새롭게 점령되어 또다른 전쟁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진영논리를 거부하는 의견이 뭉치면 그 또한 결국 또다른 진영으로 성립한다는 지적도 유효하며, 정말 기적적이고 극적으로 이러한 새로운 공론장이 실제 세계의 논의를 견인하는 일도 있을 수 있지만, 실현되기 힘들 뿐더러 그러한 일이 지속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자기부정 및 자기파괴를 통한 갱신과 쇄신을 무한히 반복할 것인데 이러한 공론의 복잡성과 속도를 일반 시민 공중이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결국 너무 앞장서 걸어가는 사람은 또다른 이유로 도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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