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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영화감상문]써니를 보고 (써니 영화 감상문)

by 통합메일 201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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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1)

Sunny 
9.2
감독
강형철
출연
유호정, 진희경, 고수희, 홍진희, 이연경
정보
드라마 | 한국 | 135 분 | 20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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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문]써니를 보고

목차

1.소개

2.구성

3.줄거리

4.여고시절 우정에 대한 추억

5.복고와 향수 그러나 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

6.탈선과 폭력에 대한 미화

7.그 남자는 왜 나온 거냐

8.데우스 엑스 마키나

9.맺는말

1.소개

이 글은 김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를 시청하고 작성한 영화감상문이다. 본 영화는 2011년 5월 4일에 개봉했으며, 유호정, 심은경, 강소라, 고수희, 김민영, 홍진희, 박진주, 이연경, 남보라, 김보미, 민효린, 김시후, 김영옥, 정원중, 김혜옥 등이 출연했다. 2011년 제 4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편집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백상예술대상에서 강소라가 이 영화로 여자인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7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구성

이 영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중년의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틈틈이 그들의 과거를 교차시켜가며 보여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과거에 어떤 계기로 인하여 단절된 역사가 몇 십 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이어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하여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기본적으로 ‘나미’라는 인물을 통하여 과거에 대한 회상과 그 당시 과거 시점에서의 관찰을 시도하고 있다. 나아가 영화의 서두에서 하나의 목적을 설정해놓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퀘스트 수행 방식의 이야기 전개를 통하여 관객들이 좀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3.줄거리

주인공 임나미는 전라남도 벌교에서 서울로 이사 온 고등학교 여학생이다. 시골 촌뜨기인 그녀에게 서울은 모든 것이 낯선 공간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자잘한 실수를 하는데, 그러한 실수로 인하여 전학 온 첫날부터 학교의 왈패들과 엮이게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독특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집단의 리더인 하춘화의 역할이 컸다. 배우 강소라가 연기한 하춘화라는 인물은 매우 카리스마가 있는 존재로서 그녀가 앞장서서 임나미라는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게 되자 다른 인물들도 ‘대부분’ 자연스럽게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은 그녀를 좀처럼 쉽게 집단의 일원으로 확신하지는 못했는데, 옆 동네 학교의 ‘소녀시대’라는 이름의 써클과의 일전에서 임나미가 귀신 들린 연기로 커다란 공을 세움으로써 친구들은 완전히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임나미에게 쌀쌀하게 굴던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수지’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학생으로써 당시의 하이틴 스타였다. 청소년 잡지 모델로도 활동하는 그녀는 언제나 과묵하게 창가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임나미는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그녀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힘들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나미는 수지와 화해하기 위해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게 되고, 우연한 계기를 통해 그녀가 자신의 전라도 출신 새어머니 때문에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날 밤 두 사람은 소주 한 잔을 진하게 마시며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된다. 이제 임나미는 완벽하게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았고, 친구들과 함께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고, 머지않아 그들의 행복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된다.

문제는 상미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이 인물은 원래 옛날에는 하춘화 패거리와 함께 어울리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본드를 흡입하는 바람에 하춘화로부터 배척된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있어서 갑자기 전학을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하춘화 패거리에 합류한 임나미라는 촌뜨기가 곱게 보일리 없었을 것이다. 상미는 나미에게 시비를 걸었고, 나미는 홀로 의연하게 대처하다가 위기에 처했다. 그 위기의 상황에 수지가 나타나서 나미를 구하고, 상미는 수지에게 혼쭐이 난다. 또한 그 일로 인해 상미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수지와 나미를 비롯한 하춘화 패거리에게 깊은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학교 축제가 있던 날, 상미는 홀로 매점에 있던 나미의 앞에 나타난다. 상미가 나미를 괴롭히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멤버들은 매점으로 달려갔다. 하춘화는 또다시 본드를 흡입하고 나타난 상미를 걷어찬다. 한바탕의 아수라장 속에서 상미는 수지와 맞닥뜨리게 되고, 깨진 유리조각을 집어 들어 수지의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수지는 구급차에 실려 가고 멤버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수지가 자살기도를 했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욱더 그랬다. 그렇게 그 사건으로 그들의 학창 시절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들은 모두 중년이 되었다. 중년의 나미는 좋은 남편을 만나서 꽤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남편과 딸 모두 자신들의 일에 바빠서 나미에게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제 나미는 전형적인 주부의 삶을 살아간다. 예정된 권태가 그녀를 방문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환자로 입원해 있는 하춘화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말기암 환자로서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존재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나미에게 하춘화는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옛날 수지 사건 이후로 만나지 못하게 된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부탁이 계기가 되어 나미는 한 명, 두 명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녀들은 각자 다양한 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장미는 보험설계사가 되었고, 욕쟁이 진희는 정 많은 신랑을 만나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고, 다구빨 금옥은 시댁살이를 하면서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빡빡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며,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어 했던 복희는 술집 여자가 되었다. 흥신소를 통해서 친구들을 찾았지만 수지만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하춘화가 죽어버렸다. 친구들을 모두 다 찾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수지를 제외한 다섯 명의 친구가 하춘화의 장례식장에 모였다. 상주도 문상객도 없는 외로운 상가였다. 그들은 수지를 기다리며 회포를 풀었다. 그런데 잠시후 갑자기 하춘화의 변호사가 나타나서 하춘화의 유언장을 낭독하고 집행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돈과 직장 등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수지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4.여고시절 우정에 대한 추억

이 영화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소재라고 한다면 단연 여학생들 사이의 우정이라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여고시절의 우정이라는 것은 ‘지속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소녀들이 다시 예전의 우정을 회상하며 단합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중년이 되어버리면 친구들 간의 우정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거나 ‘돌볼 여유가 없다.’는 기존의 통념에 대한 반박으로 읽히기도 한다. 분명 우리나라 특유의 결혼문화를 고려해 볼 때, 일반적인 여성은 결혼 이후에 출산과 육아 등의 문제 때문에 이전과 같은 교우관계를 지속해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년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문득 아득한 옛날의 우정과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이러한 경험은 보편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서, 스크린을 통해 그러한 서사를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그에 대한 풍부한 감정이입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70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학창시절과 중년시절을 교차하면서 제시하고 있는 바 그 속에 녹아있는 서사는 중년층 관객과 젊은층 관객들 모두에게 공히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5.복고와 향수 그러나 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복고적 요소들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장면들을 통해 추정하건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1980년대라고 생각된다. 대학가에서는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의 복장을 볼 때 교복자율화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1983년 이후인 것으로 사료된다. 현대적 패션 감각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지극히 촌스러워 보이는 복장이 수시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젊은 관객들은 그 촌스러움에 아연실색할 것이고, 중년의 관객들은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 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복고주의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 영화가 80년대라는 시대를 다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면 소녀들이 시위대와 진압부대 사이의 싸움에 휘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크린에 묘사되는 광경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양상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정말이지 그야말로 우스꽝스럽다. 정치적 시민이 비교적 보편화되어 있는 요즘의 시각에서 그러한 시대 묘사는 일견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서 촉발된 민주화운동이나 민주항쟁들을 희화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그 당시에 분명히 존재하기는 했으나, 아직 대학생이 되지 못하여 민주화운동의 서사에 본격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합류하지 못했던 주인공 소녀들의 시각은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은 현상학적 인식론의 문제다. 그 시절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그냥 역사책으로만 배운 세대들 간에는 차라리 그 시대에 대한 합의가 더 수월하다. 하지만 그 시대를 직접 살아낸 사람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 시대에 대한 인식에 있어 개인들 간에 괴리가 존재할 개연성이 보다 다분할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가능해 보인다. 시간이 흘러 그 시대가 역사의 평가를 거진 다 받은바 중년이 된 그 소녀들은 그 시대의 문제에 대해 이성적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분명히 그 시대를 살아냈으며 그 시대에서 민주항쟁을 하던 대학생들과는 또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존적 인식이 결코 같을 수는 없고, 오히려 동일한 인식을 요구하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희화적 시대상은 그렇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6.탈선과 폭력에 대한 미화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시대에 대한 희화보다 어쩌면 더 직접적인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청소년 탈선이라든지 폭력적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종종 흥행하는 조폭 영화들에 비하면 그 잔인성은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분명 청소년들의 일탈, 집단 패싸움 등이 미화되는 측면이 있다. 나아가 이런 것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년이 된 소녀들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 딸을 위해서 똑같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발상은 성인에 의한 미성년자 구타가 성립하는 것으로서 현행법으로도 불법인데 과연 이런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말이 나온 김에 계속하자면 그러면 그렇게 성인이 아이들을 때렸으면 그렇게 때린 대가로서의 처벌이 영화에서 등장해야 하는데 그녀들은 별반 처벌을 받지 않는 것처럼 나온다. 나아가 그녀들은 폭력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되면서 연행 차량 안에서 다 같이 수갑을 찬 채로 춤을 추기까지 한다. 이것을 폭력에 대한 미화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해야 할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물론 그것이 과거의 우정과 추억에 대한 로맨스를 중년이 된 시기에 다시 재현하는 또 하나의 로맨스라고 미화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에는 엄연한 도덕과 법에 대한 멸시가 함의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7.그 남자는 왜 나온 거냐

다음으로 한 가지 약간 의심스러운 부분을 지적하도록 하겠다. 이 영화에는 김시후가 분한 ‘준호’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러브라인 비슷한 것을 연출하고 있다. 메인 주인공인 나미는 준호를 짝사랑 하는데, 정작 준호는 나미의 친구인 수지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통해서 삼각관계의 플롯이 연하게 삽입되고 이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다 보고 나서도 나는 대체 이 인물과 이 삼각구도가 왜 삽입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그야말로 ‘없어도 무방한’ 장면이라고 생각됐다. 과거의 그런 삼각구도와 짝사랑의 기억을 삽입함으로써 중년의 나미가 친구들을 찾는 김에 ‘준호’의 행방도 찾아달라고 의뢰를 함으로써 결국 준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나로서는 없어도 되는 장면과 플롯이 삽입됨으로써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와 집중력을 해하는 결과를 야기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8.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남용이다. 물론 이것은 허구를 기반으로 짜여진 작품들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도 있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남용될 경우 필연성이 극도로 저하되면서 오직 우연으로 점철되는 졸작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영화도 분명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중년의 임나미가 하춘화를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지극히 우연적이라는 것이 그러하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사건에 시동을 걸기 위하여 피치 못하게 사용된 것으로 봐줄 수는 있다.

둘째, 흥신소라는 장치가 너무 사기적이다. 아무리 흥신소라지만 그렇게 친구들을 척척 찾아낸다는 것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과거에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이라면 과연 그들이 흥신소라는 불건전한 수단을 사용해서 찾아야만 하는 대상인지도 의문스럽다. 흥신소를 동원할 정도로 관계가 소원한 친구들이라면 애당초 다시 찾아서 만나고 싶을 정도의 동기가 성립하지 않는 게 더 개연적이지 않은가? 하여간 이 흥신소라는 장치는 여러모로 이 영화의 개연성을 해하는 요소다.

마지막으로 하춘화가 남기고 간 유산의 문제가 있다.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우리는 안타깝게 살아가는 임나미의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런 안타까움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장치가 있으니 바로 하춘화의 유산이다. 이것은 위에서 내가 지적한 ‘좋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화’와도 겹치는 맥락이 있다. 하춘화는 카리스마와 전투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불량 청소년이었다. 하춘화 패거리가 그토록 이리저리 설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 각자의 능력 덕분이기도 했지만, 하춘화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카리스마와 전투력의 영향이 지배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장성한 뒤에 그녀는 이번에는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친구들에게 은총을 베푼다. 매우 훈훈한 결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 그 정도의 돈이 있었다면 친구들이 그렇게 망가질 때까지 왜 그녀는 친구들을 찾지 않았을까? 흥신소에 의뢰하면 하면 그렇게 척척 찾아주는 친구들인데? 그리고 그렇게 돈으로 모든 것이 행복하게 마무리 지어지는 세상이라는 것이 어쩐지 한없이 불편했다. 글한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엔딩은 결국 하춘화라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죽어서까지 다른 이들의 위에 군림하면서 그들에게 은총을 내리는 구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다보면 대관절 친구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자문을 피할 길이 없다. 대체 친구란 무엇일까? 나는 친구라는 관계에 있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상호작용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근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평등 혹은 동등에의 지향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하다. 그렇게 죽은 친구의 유산을 물려받아 일어서게 된 이들은 과연 떳떳했을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적고 나니 내가 이 영화의 엔딩과 설정을 너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춘화의 마지막 유산은 모든 친구들에게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잘 사는 친구들에게까지 물려준 것이 아니라, 돈이 꼭 필요한 친구들에게 자립의 수단으로 물려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남은 모든 친구들이 서로 평등과 동등성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 좋은 친구인 것 같다.


9.맺는말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어머니께서 지독한 감기에 걸리셨다. 며칠을 앓다가 이제 거의 나아가는 어느 날에 나는 어머니께 이 영화를 권해서 함께 봤다. 어머니는 영화를 보다보면 꼭 꾸벅꾸벅 졸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볼 영화로는 한국영화가 적합했고, 나는 한국영화 중에서 어머니의 정서에 맞을 것 같은 영화로 이 영화를 골랐다. 개봉한지 2년이나 지난 영화였지만 어머니의 학창시절 근처를 그리고 있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학창시절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80년대가 아니라 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녀들처럼 어지간히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두 시간을 걸어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이따금 술이라도 들어가면 그 시절을 회상하며 서럽게 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는 생생하다.

다만 바라기로서는 당시의 어머니도 친구네 집에 모여 가요를 들으며 막춤을 춘 적이 있다는 말을 하셨으니 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 좋은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랄 뿐이다. 중년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 어머니의 삶에 친구들과의 추억이 조용히 파동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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