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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철거 위기에 몰린 우리 마을 꿩, 닭 사육장

by 통합메일 201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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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마을에는 길가에 조성된 방음, 방풍 둔턱가에 이렇게 누군가가 사육장을 지어서 꿩과 닭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어디 삼계탕 집을 운영하는 사람이 지었나 싶기도 했지만, 제가 알기론 그 근처에 삼계탕 집은 없고, 그나마 있는 토종닭 음식점은 거기로부터 약 500m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목적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물망 안 에는 닭이 있었고 심지어는 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서 보니 그 사육장 우리에 대자보가 붙어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얼른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인 즉슨 다음과 같습니다.


철거요청 민원인 보세요.

이 공간은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만든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삭막한 도시공간에서 동물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흐뭇해 하시고 즐거워 하신 어르신들과 아이들 및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꿩과 닭에게 주라고 어르신분께서 주셨던 쌀 한줌, 해맑게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진 닭에게 줄 배춧잎 몇 장... 자칭 닭박사 할아버지... 길고양이를 쫓아 주시던 할머니...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보살펴 주셨습니다. 이제 꿩과 닭은 터전을 잃고 철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연으로 놓아주기에는 엄동설한의 한겨울에 먹이 구하기 또한 쉽지 않을 것이고, 야생으로 길러진 동물이 아니기에 이미 자연과 공존하기는 힘이 들 것 입니다. 지금 이 공간이 삶의 터전인 동물들 입니다. 민원 철회를 하신다면 많은 아이들과 주민들이 더 오래도록 꿩과 닭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넓게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 이것은 마치,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조류버전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무허가 건물에 살아가는 꿩과 닭 가족들은 공권력에 의한 철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웃어버렸네요.) 민원을 제기한 사람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대자보를 읽으니 확실히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설치자 혹은 대자보 작성자의 심경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떠올라서 눈물을 왈칵 쏟을 뻔 했군요.


대자보 밑에 적힌 주민들의 응원 멘트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유행했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영향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육장을 들여다보니 그 많던 닭들은 보이지 않고 꿩 한마리가 홀로 외로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살이 토실토실해서 몸통이 축구공만하더군요. 충북 청주시 수곡동에 있는 사육장, 그 곳에서 철거만을 기다리는 조류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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