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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각

불투표자를 위한 시선(투표율과 도덕윤리)

by 통합메일 201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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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4지방선거가 끝났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비교적 조용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선거는 선거라고 제법 시끄러웠다.


언제나 그렇듯 투표율은 세간의 관심이었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외치는 정치적 회의주의자라도,

저녁식탁에 앉으면 들리는 9시 뉴스의 투표율 보도에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법이다.




이번 2014년 6.4지방선거의 투표율은 5.68%였다.


그 중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인 것은 대구였고,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인 것은 전남이었다.


투표율은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논리적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투표율이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서 여권에 이로울 수도 있고, 야권에 이로울 수도 있다.


그 영향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는 없겠으나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 싶다.




최근에 들어서는 그러한 통계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예년에 비해서 유난히 더 투표율에 집착하는 세태가 눈에 띈다.


투표를 독려하는 세력을 가면히 보고 있으면, 높은 투표율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알 수 있다.


높은 투표율은 보통 야권에 유리한 모양이다.


현재의 야권은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 역시 보수의 울타리에 편입되는 것이지만,


상대적 진보라고 해야할는지는 모르겠지만, 편의상 진보라고 하자.


하여간 그러다 보니 야권지지자들의 경우에는 투표를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것 뿐만 아니라


투표라는 행위를 모종의 '선의'와 결부시키고,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를 모종의 '악의'와 결부시키게 된다.






역대 투표율을 검토해보자면 4회(51.6%), 5회(54.5%)에 비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56.8%라는 투표율을 비해서 확실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사전투표제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시행한 것에 비하면 사실 초라한 성장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 선거에는 시국의 영향으로 여권이 민심을 잃어 야권이 좋은 결과를 낸 덕에


투표율을 대상으로 한 성토라든가 회의 같은 것은 비교적 덜 발견되는 듯 하다.


대신, 지역감정이 뚜렷하게 반영된 결과를 보면서 결국 "그 지역은 어쩔 수가 없다."라는 방식으로


그러한 감정들이 대신해서 표출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투표율에 대한 문제니 지역 이야기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의 글에서 나는 '투표는 칭찬받을 만한 행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2014.05.31 사전투표 인증샷 완료-"하지만 투표는 칭찬받을 행위는 아니다."



주장의 요지는 투표라는 행위는 이타적인 행위라기 보다는 이해타산적인 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그것에 칭찬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민주주의가 탄생할 때부터 목표로 삼았던 투표라는 행위의 본질이기 때문에 정당화가 수월하다.


하지만 문제는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 즉 다시 말해서 '투표 부작위' 혹은 '불투표'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라는 개념에는 사실 '투표 하지 않는 이'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운영을 결정할 권리를 사회의 소수로부터 부분적으로라도 사회 모든 이들에게로 분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 할 것인데, 민주주의의 고안 이념 속에는 그렇게 분배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시민이


'설마' 있을까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난감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투표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권리', 그것도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장 본질적인 '권리'로 이해되어야 하지


결코 '의무' 혹은 '권리인 동시에 의무'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오해되는 순간 투표는 그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들어 발견되는, 불투표자에 대한 경멸과 같은 것들은 이러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을, 어떤 선행이나 의무를 방기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친 행위를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투표 부작위자들에 대하여 그러한 경멸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투표는 어디까지나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 만큼 우리는 불투표자를 그렇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알 수 없게하는 비밀투표의 원칙이 지켜지는 이 사회에서


불투표자에 대하여 그런 태도를 시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불투표자에 대하여 다른 방식으로 비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금은 독특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근래의 나는 민주주의 에 대하여 다소 극단적인 이해를 시도해 보곤 했다.


그것은 '망하든 흥하든 모두의 선택을 통하여'라는 단어를 통해 표현될 만한 것이다.


이른바 순수절차적정의의 원칙에 따라서 사회 구성원 전체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면 망하든 흥하든 그냥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 구성원 전체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투표자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가 행한 것이 선행이나 악행은 아니고, 그 부작위에 선의나 악의는 없다 하더라도


그의 부작위로 인하여 이 시스템의 순수절차적 정의가 훼손될 때 바로 그 이유에 의해 그는 비판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민 4천만명 중에 3천 999만 9999명이 모두 투표를 하고 단 한 명이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반면, 투표를 선의로 여기는 사람들이 경우, 혹은 높은 투표율을 자신의 지지 집단에 이로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호하는 사람의 경우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단 한 명의 불투표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저 마지 못해 비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이론의 경우에는 다르다. 그것은 이롭다거나 이롭지 않다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정의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99%의 투표에 의해 사회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1%가 나머지의 투표를 완성시킨다고 해도 그 결과를 바꾸지 못하며, 오히려 그 결과를 더욱더 공고히 하게 만드는 그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투표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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