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해당되는 글 60건

  1. 고통과 시간의 복화귀선
  2. 고즈넉. 몸짱이 되자.
  3. 희, 미, 설
  4. 명사로만 이루어진 세상
  5.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6. 흔쾌히
  7. 바다사자 꿈에선
  8. 원수 정봉덕
  9. 정봉덕2
  10. 정봉덕
  11. 독주
  12. 봄비 맞이(2015)
  13. [시작]건너편에 너를 두고
  14. [자작시]물때
  15. [자작시]식권
  16. 예뻐진 여자
  17. [단어채집]20140422
  18. [시]시작은 끝을 품고 태어났거든
  19. 과친(過親)
  20. [자작시]After christmas
  21. [결혼식축시]오래된 술집
  22. [자작시]월동준비
  23. [자작시]인어의 딜레마
  24. [자작시]비 오는 날의 호흡
  25. [자작시]멸망이 없는 아침
  26. [자작시]우물
  27. [자작시]사산 (2)
  28. [자작시]불치병
  29. [시쓰기]감옥
  30. [시쓰기]밤의 버스








고통과 시간의 복화귀선


흔히 통증은 시간 속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니까 하필이면 이렇게 좋은 시험기간에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조용히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배가 아팠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시간 속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졌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는 것은 고통이 시간 속에 갇혀있는 데 아니라,시간이 고통 속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아니 혹은 고통이 시간을 품고, 또다른 시간이 그러한 고통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통증이 가시지 않는 한 시간의 속도는 다시 회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은 고통에 갇혀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고통이 끝나리라는 점에서 고통은 다시 시간 속에 갇힌다. 물론 이때의 시간이란 다분히 서사적 차원에서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때의 고통 역시도 다분히 단편적 의미에서의 고통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원을 달리하여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생을 관통하는 고통은 어떤가? 즉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생즉고로서의 고통 말이다. 영원한 고통 탓에 시간의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고통의 소멸 뒤에는 분명 시간의 속도에 변화가 찾아오겠지만, 그럴 일이 없으니 그러한 가정 또한 무의미하며, 시간의 속도에는 변화가 없을 테니, 시간은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치부하게 되는 것이며, 종국에 가서는 시간은, 그러한 흐름은 영원한 고통에 기대어 존립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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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 몸짱이 되자.









고즈넉. 몸짱이 되자.


걱정하는 일 없이 차분히

그 누구도 그리워 하는 일 없이 외루이


읊조리는 것은 시가 아닌 입버릇

의지가 아닌 마음의 버릇


시작에는 자세가 중요하다

근육과 근육의 적당한 텐션

완벽히 균형 잡힌 자세에서 좋은 시가 나온다


그러니 좋은 시를 쓰여면

책보다는 술보다는 헬스에 돈을 쓰는 게 맞다


모든 것은 결국 모든 게 나의 의지가 아니라

마음의 버릇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분명 우리는 취한 채로 이별로 치닫지 말고

그래 그런 찌질한 시를 쓸게 아니라

어서 빨리 몸짱이 되어서, 그렇게 사랑을 해서

관능 가득한 시를 써야만 할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잡아보자

전설의 시를 위하여.


12.9.

아침엔 길바닥이 꽈재작 얼어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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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미, 설









그래

뭇것들이 눈이 되어 낙하하던 날에는

하필이면 때마침 속이 냉했고

언어는 한없이 가볍고 허약해

네게 닿는 일이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자연히 마음도 시절도

성난 엄마를 무서워 하듯

좀처럼 집으로 기어들어오지 못하고

가로등 맺힌 골목 어귀에서

벽에 기댄 채 조용히 쭈그려 앉아보는 일이다.


벌린 채 눈(雪)을 모으는 입

내려앉자 마자 녹아내리는 눈처럼

'희'하고, '미'한

우리 간의 지척

결의, 호기, 약속, 신념, 포부, 인내, 고뇌


허하고 탈해진 밀가루 빵 속엔

농밀한 공명이 또아리를 틀었고

나는 마음에 익은 갈림길에서

늘 그렇듯 어미의 자궁으로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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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의자, 인간, 학생, 펜, 시험지, 답안지

머리카락, 눈, 눈동자, 코, 콧구멍, 입, 턱

시선, 시간, 시계바늘, 공기, 호흡, 배합, 들숨, 날숨

실수, 위기, 모면, 점심, 허기, 구산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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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원하는 것을 가지고도

이제는 더이상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라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때로 머리카락 사이로 당신의 하얀 얼굴이 보일 때면

무언가 불현듯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지곤 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선한 동기도 긍정적인 결과에 의해서만

긍정되어지는 시대의 오늘에

아마도 나의 적확한 사명이란

가만히 눈을 돌려

홀연히 몸을 날릴 진리를 찾는 것일 텝니다.


피할 수 없는 사랑과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결국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이미 다 꿰매버린

전생의 매듭에선 부디 나의 이성을 공고히 해주십사

얘길했을 게 아주 틀림없습니다.


혹은 그도 아니라면 나는

저 먼발치에 잔뜩 깔린 몽돌의 시니컬함으로

몇 백년이건 납작해질 때까지

당신의 마음 속을 굴러다닐 수 있을까요.


개구리가 웁니다.

냄비 속의 개구리가 저리 슬피 우는 까닭은

앓고 있던 혈압 때문일 수도 있고

잠에서 깨어보니 빤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공 없는 허공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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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쾌히









흔쾌히


너는 태어나 뿌리치지 못하게 아름다울 텐데

그런 너를 두고 생각하는 것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고보면 하나하나의 사람이란

낫지 않는 아픔.

세상에 무수히 널린 상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죽음은 이 세상에 흉터로 남는다.

지워지지 않는..


소설소설 눈이 내려

소봇소복 쌓인다.

입김에 당신의 이름이 서려 

한가득 머금었다가 이내 토해내곤 했다.


그래 당신은 나의 체온이었고

열을 빼앗긴 나는 이내

몹시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키지 못할 인연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산너머 당신이 사는 마을

조용한 습기가 어려

마치 수장된 인디언의 마을처럼

마음에 담으면 늘 눈시울을 적신다.


오른손에 쥔 펜을 왼쪽 주머니에서 찾는 것처럼

습관에 취한 나는 너와 함께 늘 너를 찾아 헤맸다.


누군가를 영원히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은 마치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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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사자 꿈에선







<바다사자 꿈에선>
2015.07.21

아는 동생과 함께 해변으로 갔다.
낮에 섬을 소재로 한 다큐를 봐서 그랬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는 동생과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해변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간만에 맡는 충실한 냄새
무슨 강의라도 들으러간 기분으로 우연히
황송하게도 아니 여긴 바다이건만,
물소를 발견했다.
그즈음 해서는 이미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다.
꿈을 초월한 꿈이요
현실을 초월한 현실이 펼쳐지는 것
바다물소 앞에서
나는 필사적이 되었다.
물소는 친구로 보이는 물소들과 함께 해변에 앉았다.
시덥잖은 사자들이 물소 떼의 주위를 맴돌았다
나만은 거기서 제외되고 싶었지만 결국 가장 지독한 건 나였다.
어찌 보면 차라리 하이에나라고 해두는 게 맞겠으나
그래도 싫어 바다사자가 되기로 했다.
사자들은 지루하게 물소 떼를 지켜봤다.
부신 눈을 잔뜩 찌푸려 미간엔 하염없이 깊은 주름이 패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짧은 편지를 썼다.
바다사자의 앞발은 필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물소를 놓쳤다.
황망한 심정으로 달려 나갔다.
저 뒤에 있는 물소, 사자를 만나 서로를 위협하는 그들.
물소는 전화번호를 건네고 나서야 간신히 사자 떼를 물리칠 수 있었다.
쭈뼛거리며 다가서는 나를 향해 휙 몸을 돌리는
그녀의 눈빛엔 피곤과 지겨움이 어렸다.
선생님 저를 기억하시나요.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 해 되물었다.
길이 막혀있진 않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 해 알겠노라 꾸벅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내 손이 여전히 편지를 꽉 쥐고 있음을 알았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그곳엔 물소도 사자도 없었다.
쓰레기가 흐르는 육교 계단에 걸터앉아
넋 나간 표정으로 동트는 하늘을 마주했다.
육교 위에서 연예인 김수미 할머니가 청소하게 비키라며 쌍욕을 했다.
나는 시계를 가리키며 아직 7분 정도가 남았다고 대거리했다.
문득 옆자리를 보니 아는 동생도 사라져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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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정봉덕







원수 정봉덕


마치 계절처럼 믿어온 것들이

거짓말처럼 깊이 잔다

어떄요

당신의 자장가

한시라도 그를 꿈꾸었나

사랑마요

마요는 한솥도시락에 있는 걸

원수 정봉덕

야 이 친절한 형님아

어우 썅 시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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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덕2







정봉덕2


쓰러졌습니다 당신

숙인 고개가 낯설어

한참을 쳐다봤습니다


형의 귀가 목덜미가

턱선이 그랬나 보다 합니다


홀로 심심해서

참이슬도 한 잔

아까봐둔 이쁜 애들

아직 거기 있네요


두리번 두리번

형 자요?

두리번 두리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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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덕







정봉덕


그랑죠 그랑죠

주문을 외우면 당신이 나타나면 좋겠다

그렇게 적고 출입구를 쳐다보니

굉장한 미녀가 들어와서

누구에게 죄송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발자국

애써 당신 부르러 가는 것을

애둘러 나는 막았다

그 형님 어딘가에서

알아서 빛나고 있을걸 뭐“


소녀시대의 태연이 노래한다

당신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마침표 점점이 당신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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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주







독주


주목받지 못하는


깊은 밤의 청정한 내가 취한다.


아까는 아둑시니라는 말이 기억나지 않아

원망할 곳이 없어 두려웠다.


혹은 왜 하필 아둑시니여야 했는지

두려웠던 것은 사실 그것이었으리라


웃는다

파인 길을 따라 익숙한 조소가

저마다의 자리로 흘러가 고인다


떨어지는 물방울

누군가 당신

누구여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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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맞이(2015)







봄비 맞이(2015)

봄, 하고
비가 왔습니다.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웅크려 변명이라도 하려 하니
또 억지로 이렇게 커튼을 젖히네요
그래요 또, 올해도 애서 태연하게
미세한 입자로 걸어들어오는 당신을 마주합니다.

말하자면,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려서,
갑자기 열리는 봄에
나는 너무나도 철이 없어서,
어제로 돌아가면, 내년의 오늘까지 잠이 들면
다시 마음껏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때로 나이라는 것은 제법 큰 편안함을 제공하더군요
누군가에게 초연한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적잖이 감사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조금도 늙지 않는 것인지
올해도 어김없이
봄,하고
비가 오니
무수한 당신이 잔뜩 뭉뚱그려집니다

허튼 생각,
땅을 적셔
좀처럼 마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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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 너를 두고>


결국에는 뻔하다,고 나는 말한다

같잖은 상처나 아픔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뻔히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해본다

온갖 것들을 곱게 쓰다듬는 시선도

변함없이 서로를 향할 것 같은 씀씀이도

칭찬에 내미는 겸양도

트집과 아집과 경멸로

얼룩지리라

심장, 혹은 간의 근처에서 불쑥

겁이 비집고 나온다

미래에서 기어올라온 기억,

나를 투과해 과거로 가네

가슴에 난 큰 구멍,

고개 숙여 귀기울인다

그 구멍 건너편에

너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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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


때로 인류가 땅에 꽂곤 했던 영광


낮게 누운 깃발의 그림자가


당신과 나 사이


더듬어지고야 마는 금이 된다


볕이 따갑다고 멀리서, 꾸벅꾸벅 조는 시늉을 하는 내가 있다


꾸벅꾸벅 좋아했다 꾸벅꾸벅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문득 미워지고


잊고있던 주전자에 물이 끓어넘치는 순간이 찾아올 때


나는 이제 결코 당신을 미워할 수 없음을 알았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주고, 좋아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일에


밀물과 썰물을 마주본 기분에 기대, 다행히 놀라지는 않았다


뜨고 지는 달 같은 그 무엇을, 내 마음도 끊임없이 쫓아가는 모양이라고 에두를 뿐


쏴아, 철썩, 하는 소리로 마음이 우는 밤


밀물인가 썰물인가


바다를 마주한 나,


무엇으로 이 순간을 느껴야 할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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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권>


입김 유난히 하얀 겨울밤,

그 밤 더욱 진해지는 고물차 아래,

고백컨대 참으로 맛있어 보이는 고양이가 있었다

채 자라지 못해 야들야들한 살결이 고래와 같은 배고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틀, 천천히 쭈그려 앉는데 어디 멀리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취한 남녀의 실갱이 소리가 치닫았다

으르렁대는 먼 배고픔을 들으며 주머니 속에서 잔뜩 곱은 손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아무리 온기로 적셔도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마지막 식권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차 밑에 웅크린 배고픔이 나를 마주하고, 나도 배고픔을 마주하는데, 손뼉치고 핥는 소리를 내도 결코 나올 줄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다시 한 차례 배고픈 비명이 도시의 계곡을 뒤척이게 만들 때, 나는 허기를 잊었고, 나의 패배를 깨달았다

생을 부지하기 위한 굴종

내 주머니 속 먹을 권리를 꺼내 내민다

배고픔 유유히 등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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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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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진 여자>


여명이 들풀의 간사함을 밝게 비춘다

간밤의 절망과 한탄은

안개와 함께 걷히고

이슬과 함께 말라붙었다

뺨을 쓸어 올리는 바람에

긴 후회가 눈물자국을 따라

문득 떠올랐다가 때로 잊혀지곤 했다

노래를 잘 하나요

중양이 되어가는 한때의 일출을 향해 외쳐 물었다

햇무리 우수수 파도 위에 떨어져 일렁이는데

문득 낮이 되기도 전에 돌아올 밤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

채 끝나지 않은 하루 안에서, 살아내지 못한 무수한 내일의 실존을 다짐하는 것

부서진다 나의 시선

결코 잠들지 않는 바람에, 굳지 않는 파도에,

감고 싶지 않아 애써 멀리 던져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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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돌아본 하늘에 여전히 별이 빛나도


잔인한 4월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고,


사라짐으로써 기억되리라


불현듯 떠오르는 빈자리


설레발주의보를 발령합니다.


예고된 실증,


마치 결코 실증내지 않고 잘 가지고 놀겠다고 부모에게 뗴를 쓰는 것과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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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끝을 품고 태어났거든>



다시 한 번 고아가 된 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결국 착각과 조우하곤 하던 밤

가까워서 머나멀다는
전설 속 고향에도 분명
밤이 있었을 테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 밤에 하염없이 조용한
가로등이 된다면 좋겠구만

아름답지 못한 숨들로
거듭하는 생에도
이 밤이 거침없이 아름다우니

어쩔 수 없이
문득,
창피하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던 때처럼

꽃이 피리라
혹은 떨어지기 위하여
그리도 아름다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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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친(過親)







그대들의
못된 버릇들이 똘똘 뭉쳐
기어이 내가 되리라
기필코 내가 되리라

실망과 기대가
한류와 난류처럼
나의 고향을 쫓는다

있지 않거늘
어쩌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모양

술을 마셔도 그저 먹먹한 위가
조용히 훌쩍이는 심장의 어깨를 덮었다

형용 형용
밤은 오늘 그렇게 속삭인다

그래
4월은 여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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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After christmas







<After christmas>



비싸게 사소서
생이여
맹세컨대 나는
어느 한숨
함부로 내쉬지 않았소


태양이 트럼펫을 불던 시절에
어느 태권도 학원장은
크리스마스의 t를 강조했소


나는 그때 처음 묵음이라는 걸 알았소
찍히되 소리나지 않는 글자를 알았소
사귀되 기억되지 않는 인연을 알았소
노동자 없는 자본주의를 알았소
국민이 없는 민주주의를 알았소


물론 
나는 내가 묵음이 될 줄은,
묵음으로 태어난 인간이
나일 줄은 상상도 못 했소


얼굴 없는 거울 앞에
그래도 제딴엔 이렇게
소리 없이 온 몸으로 우는데



값을 치러주오 생이여
나는 이 화려한 하루 사이에
몇 번이고 부지런히
숨죽였던 묵음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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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술집


어디 갈까 하다가
머뭇거리는 걸음 끝에
마지못해 밀어젖힌 유리문 저편으로
그리움 담을 그릇이 태어난다
 
때로 그것은 보잉 737
언젠가 한 번은
스쳤을지도 모르는 이들과,
돌아갈 수 없어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별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우리의 이야기는
거짓말처럼 이륙하곤 했다
 
어디까지 날아갈까
이제는 땅 딛고 살고 싶어
낡은 엔진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우리는 숱하게 또 비행했다
 
그러다 때로는
담배 끝에서 흘러나오는
구름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술집과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 아닐까
 
여기서 바라보는 뭇 풍경이
그리워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염없이 불투명한 1초 뒤와
주머니 속에 구겨 넣은 고민들과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서러움,
끝내 사랑할 수 없던 사람들까지
 
마지막 비행을 하던 밤에는
때마침 달이 밝아
세상은 잠시 별을 잊었다
여명도 잔잔하게 멀었다
그 시니컬한 배려 속을 날아서
우리는 한 번도 떠나온 적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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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월동준비







<월동준비> 

 

곧 겨울이 오리라

해맞이를 위해서 고개를 좀 더 비스듬히 꺾어야 하는 일에 익숙해지리라

나의 겨울은 허공에서 태어나리라

계절은 베란다 유리창을 통해 자신을 꼭 닮은 나를 목격하리라

그것의 눈동자는 앙상할 것이고끊임없이 무언갈 그리워할 것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한참을 바라보리라

마치 방금 전에 헤어졌던 이들처럼

아직도 거기 있냐는 눈빛으로 그 허공을 채우겠지

기다리던 눈이 내릴 때까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들로 그 허공이 메워질 때까지

바로 그 때까지나는 이번 생에서도 여전히 그리고지우고또 그린다

그곳에그곳의 겨울에

그러니까 영원한,

겨울에 내가 내리고

당신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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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딜레마

말을 자금 해야 하는디
때로는 툭툭
어떨 때는 스멀스멀
혹은 또 능글능글


공허다
텅 빈 우리의 사이가 아파
쓸모 없는 말로라도
채워보려는 거였겠지


아무렴,
철부지의 종특이 어딜 가누
무릇 사내는 말수가 박해야 한다 하여
가슴이 넓은 쾌남을 꿈꾸었으나


오늘밤도 나는 송아지처럼
터벅터벅 집을 찾아가는 길에
어김없이 입맛이 써서
세상 몰래 중얼중얼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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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호흡


비가 오는 날에는
짧은 호흡으로 말해요
우리의 대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간밤엔 기억이 내 등을 톡톡
그동안 너무 게을렀나봐요
됐어요 나는 꿈 속으로 갑니다


내 마음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데
나는 얼마 잠들지도 못해요
그래서 노년은 더욱 길어지는 거겠죠


계절의 경계가 무뎌졌다네요
우리의 양지에까지도 벌레가 꼬이고
아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세상을 짓지 않아요


이렇게 또
호흡이 한숨을 닮아갑니다
이 비가 그치지 않길,
그게 내 소망이라면
나는 너무 괘씸한가요
이기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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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이 없는 아침>



이 답답함의 까닭은
나의 둥지가 아파트여서는 아니다

서사 없는 삶,
조각난 하루를 세며
아침마다 멸망의 부재를 확인하는 게
에덴에서 난 나의 임무였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언젠가 끊어져버릴 이야기
닭이 되어버린 주작이다

저기 산 너머엔
나날이 하늘로
시간을 날려보내는
이들이 산다던데

잡을 수 없는 순간이 가진 유독함에
나는 간밤에도 오줌을 쌌다

헛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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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우물







우물

 

첨벙

또 누가 떨어진 모양이다

친구들은 안간힘을 쓰며 벽을 기어올랐다

축축한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와글와글 울었다

너도 빨리 올라 오렴

호기심, 경멸, 동정, 혐오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차피 입구는 막혔어. 올라가 봤자야

그래도 그 물 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대답 대신 나는 검은 심연으로 잠수했다

말라비틀어진 청춘과, 시체가 된 꿈들이 부유했다

나는 수몰되어 끊어진 계단 밑에 숨었다

체온은 차디찬 수온을 닮아 가는데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

입을 벌리면 부끄러운 비밀들이 기포가 되어 솟구쳤다

모두 삼켜야만 한다

검은 물에 잡아먹히기 싫으면

검은 물을 잡아먹는 수밖에

나는 끊임없이 들이마셨다

내일을 지켜주지 못한 베란다 난간과

모기향처럼 피워놓았던 연탄

엉뚱한 곳에 박혀버린 식칼

너무 많이 삼켜버린 수면제

하지만 이번에도 사레가 들렸다

모두 다 토해버렸다

그을린 물 위로 나는 천천히 떠올랐다

그 새 친구들은 더 높은 곳까지 올라 있었다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 봤다

누군가 닫힌 입구를 두드려 보지만 반응은 없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이젠 나도 슬며시 벽을 기어오르며

와글와글 와글와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잔뜩 힘을 주고

와글와글 와글와글

몰래 밑을 내려다보며

와글와글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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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사산







사산

김정환

자 여기 단어 두 개

그리움이 그립다

기억해본다

세수를 하다가 사진첩 생각이 났다

언젠간 고향의 옹달샘을 찾듯 잠시 돌아올지도 모를 이들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말간 손이 뻗어 나오리라

박제된 시간을 더듬으리라

나는 용기 내어 그리움을 잉태한 인간이다

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지는 추억을 노려보는 인간이다

당신도 한 방울의 그리움을 품었는가

환멸의 정상에 올랐을 때 문득 혼자일까 두려워

불현듯 창을 열고 허공을 젓고 싶다

내 그리움이 아니라고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알잖아

사귀지 않아도

서로의 망각을 나눠먹은 이들은

언젠간 같은 얼굴로

똑같은 그리움을 사산하는 법이라는 걸

이 글엔 그리움도 상징도 아무것도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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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김정환

 

TV를 틀면, 라디오를 틀면 속삭이는 목소리 들린다

조근조근한 손가락이 칙칙한 허공을 가리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병사했다고 알려주었다

보이지 않는 그곳에 불치에 거꾸러진 이들의 빈자리가 있었다

허전한 공명음은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었다.

탁주로 떠넘기는 떨림에 취해 나는 울었다

몹쓸 병, 함께 하고 싶어서

몹쓸 병, 자유롭고 싶어서

몹쓸 병, 행복하고 싶어서

몹쓸 병, 사랑하고 싶어서

불치병, 약도 없어서

불치병, 결코 나을 수 없어서

겨울밤 이불 속에 웅크려 제발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찢어지는 기침으로 아침을 꿰메며 죽도록 살고 싶었다

봄의 햇살에 눈을 감으면 가슴 속 구멍에 빛이 고였다

빛이 고였다 빛이 고였다 마르지도 않고 빛이 고였다

뜨겁게 익은 눈물이 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몹쓸 병, 불치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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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김정환

 

겨울의 햇살에

언 창살이 녹아내린다.

 

닭이 투명한 울림을 토하기도 전에

죄수들은 머리를 감고

오늘도 어김없이 석방됐다.

아니 석방 당했다.

 

모두가 떠난여전히 몽롱한 감옥에는

살비듬 묻은 마음만이 남아서

쉼 없이 날이 서 가는 햇살을

찡그린 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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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버스>

 

김정환

 

밤의 지방도로를 버스는 달린다

잔뜩 힘 준 라이트엔 엉겨 붙는 눈발이

김 서린 차창에는 누군가의 손바닥이

흔들리던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있지

그리고 그 뒤로는

휑한 돌아봄이 긴 꼬리처럼 달라붙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진 않았지

잊지는 않을게야

내일도 도시는 반짝반짝 숨을 쉴 테고

엎드린 눈 위로 아스라한 빛을 향해

밤의 버스는 달려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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