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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65

[자작시]불치병 불치병 김정환 TV를 틀면, 라디오를 틀면 속삭이는 목소리 들린다조근조근한 손가락이 칙칙한 허공을 가리켜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병사했다고 알려주었다보이지 않는 그곳에 불치에 거꾸러진 이들의 빈자리가 있었다허전한 공명음은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었다.탁주로 떠넘기는 떨림에 취해 나는 울었다몹쓸 병, 함께 하고 싶어서몹쓸 병, 자유롭고 싶어서몹쓸 병, 행복하고 싶어서몹쓸 병, 사랑하고 싶어서불치병, 약도 없어서불치병, 결코 나을 수 없어서겨울밤 이불 속에 웅크려 제발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찢어지는 기침으로 아침을 꿰메며 죽도록 살고 싶었다봄의 햇살에 눈을 감으면 가슴 속 구멍에 빛이 고였다빛이 고였다 빛이 고였다 마르지도 않고 빛이 고였다뜨겁게 익은 눈물이 .. 2013. 12. 2.
[시쓰기]감옥 김정환 겨울의 햇살에언 창살이 녹아내린다. 닭이 투명한 울림을 토하기도 전에죄수들은 머리를 감고오늘도 어김없이 석방됐다.아니 석방 당했다. 모두가 떠난, 여전히 몽롱한 감옥에는살비듬 묻은 마음만이 남아서쉼 없이 날이 서 가는 햇살을찡그린 채 바라본다. 2013. 11. 28.
[시쓰기]밤의 버스 김정환 밤의 지방도로를 버스는 달린다잔뜩 힘 준 라이트엔 엉겨 붙는 눈발이김 서린 차창에는 누군가의 손바닥이흔들리던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있지그리고 그 뒤로는휑한 돌아봄이 긴 꼬리처럼 달라붙었다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진 않았지잊지는 않을게야내일도 도시는 반짝반짝 숨을 쉴 테고엎드린 눈 위로 아스라한 빛을 향해밤의 버스는 달려갈 테니까 2013. 11. 28.
[시쓰기]마지막 눈 김정환 슬슬 마지막 눈이 내릴 때가 됐구나. 깜빡깜박. 엎드림 위로 쌓임이 예약되어 있다. 그리고는 밤과 불투명 유리창과 채 쌓이지도 못하고 창을 적시는 헤드라이트를 꿀꺽꿀꺽 삼킨다 어깨가 깨진 까치 까마귀가 돋아난다 무릎이 잘린 도시에는 레드카펫 대신 진흙의 소리가 깔린다 바야흐로 전야제다 문을 열면 입을 벌린 냄새가 서있다 뒷걸음질 치다 넘어진 나를 날카로운 추억으로 난도질한다 알고 보니 구석기 시대에 유행하던 뗀석기다 최소한 간석기나 비파형동검은 기대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까마귀들이 영혼을 쪼아 먹기 위해 기어온다 뱀보다도 느리다 기다리는 건 귀찮은 일이다 까마귀도 까치도 봄도 여름도 가을도 다음 첫 눈도.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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