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시작65

[자작시]비 오는 날의 호흡 비 오는 날의 호흡 비가 오는 날에는 짧은 호흡으로 말해요 우리의 대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간밤엔 기억이 내 등을 톡톡 그동안 너무 게을렀나봐요 됐어요 나는 꿈 속으로 갑니다 내 마음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데 나는 얼마 잠들지도 못해요 그래서 노년은 더욱 길어지는 거겠죠 계절의 경계가 무뎌졌다네요 우리의 양지에까지도 벌레가 꼬이고 아이들은 더이상 자신의 세상을 짓지 않아요 이렇게 또 호흡이 한숨을 닮아갑니다 이 비가 그치지 않길, 그게 내 소망이라면 나는 너무 괘씸한가요 이기적인가요 2013. 12. 6.
[자작시]멸망이 없는 아침 이 답답함의 까닭은 나의 둥지가 아파트여서는 아니다 서사 없는 삶, 조각난 하루를 세며 아침마다 멸망의 부재를 확인하는 게 에덴에서 난 나의 임무였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언젠가 끊어져버릴 이야기 닭이 되어버린 주작이다 저기 산 너머엔 나날이 하늘로 시간을 날려보내는 이들이 산다던데 잡을 수 없는 순간이 가진 유독함에 나는 간밤에도 오줌을 쌌다 헛헛하다 2013. 12. 5.
[자작시]우물 우물 “첨벙”또 누가 떨어진 모양이다친구들은 안간힘을 쓰며 벽을 기어올랐다축축한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와글와글 울었다너도 빨리 올라 오렴호기심, 경멸, 동정, 혐오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어차피 입구는 막혔어. 올라가 봤자야그래도 그 물 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대답 대신 나는 검은 심연으로 잠수했다말라비틀어진 청춘과, 시체가 된 꿈들이 부유했다나는 수몰되어 끊어진 계단 밑에 숨었다체온은 차디찬 수온을 닮아 가는데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입을 벌리면 부끄러운 비밀들이 기포가 되어 솟구쳤다모두 삼켜야만 한다검은 물에 잡아먹히기 싫으면검은 물을 잡아먹는 수밖에나는 끊임없이 들이마셨다내일을 지켜주지 못한 베란다 난간과모기향처럼 피워놓았던 연탄엉뚱한 곳에 박혀버린 식칼너무 많이 삼켜버린.. 2013. 12. 4.
[자작시]사산 사산김정환자 여기 단어 두 개그리움이 그립다기억해본다세수를 하다가 사진첩 생각이 났다언젠간 고향의 옹달샘을 찾듯 잠시 돌아올지도 모를 이들이 떠올랐다보이지 않는 그들의 눈동자에서말간 손이 뻗어 나오리라박제된 시간을 더듬으리라나는 용기 내어 그리움을 잉태한 인간이다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지는 추억을 노려보는 인간이다당신도 한 방울의 그리움을 품었는가환멸의 정상에 올랐을 때 문득 혼자일까 두려워불현듯 창을 열고 허공을 젓고 싶다내 그리움이 아니라고,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하지만 알잖아사귀지 않아도서로의 망각을 나눠먹은 이들은언젠간 같은 얼굴로똑같은 그리움을 사산하는 법이라는 걸이 글엔 그리움도 상징도 아무것도 없다는 걸 2013. 12. 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