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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65

봄비 맞이(2015) 봄비 맞이(2015) 봄, 하고 비가 왔습니다. 지난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웅크려 변명이라도 하려 하니 또 억지로 이렇게 커튼을 젖히네요 그래요 또, 올해도 애서 태연하게 미세한 입자로 걸어들어오는 당신을 마주합니다. 말하자면,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려서, 갑자기 열리는 봄에 나는 너무나도 철이 없어서, 어제로 돌아가면, 내년의 오늘까지 잠이 들면 다시 마음껏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때로 나이라는 것은 제법 큰 편안함을 제공하더군요 누군가에게 초연한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이래저래 적잖이 감사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조금도 늙지 않는 것인지 올해도 어김없이 봄,하고 비가 오니 무수한 당신이 잔뜩 뭉뚱그려집니다 허튼 생각, 땅을 적셔 좀처럼 마르지도 않는 것.. 2015. 4. 1.
[시작]건너편에 너를 두고 결국에는 뻔하다,고 나는 말한다같잖은 상처나 아픔 따위가 아니라정말로 뻔히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해본다온갖 것들을 곱게 쓰다듬는 시선도변함없이 서로를 향할 것 같은 씀씀이도칭찬에 내미는 겸양도트집과 아집과 경멸로얼룩지리라심장, 혹은 간의 근처에서 불쑥겁이 비집고 나온다미래에서 기어올라온 기억,나를 투과해 과거로 가네가슴에 난 큰 구멍,고개 숙여 귀기울인다그 구멍 건너편에너를 두고 2014. 6. 19.
[자작시]물때 물때 때로 인류가 땅에 꽂곤 했던 영광 낮게 누운 깃발의 그림자가 당신과 나 사이 더듬어지고야 마는 금이 된다 볕이 따갑다고 멀리서, 꾸벅꾸벅 조는 시늉을 하는 내가 있다 꾸벅꾸벅 좋아했다 꾸벅꾸벅 좋아하지 않았다 사랑하던 모든 것들이 문득 미워지고 잊고있던 주전자에 물이 끓어넘치는 순간이 찾아올 때 나는 이제 결코 당신을 미워할 수 없음을 알았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주고, 좋아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일에 밀물과 썰물을 마주본 기분에 기대, 다행히 놀라지는 않았다 뜨고 지는 달 같은 그 무엇을, 내 마음도 끊임없이 쫓아가는 모양이라고 에두를 뿐 쏴아, 철썩, 하는 소리로 마음이 우는 밤 밀물인가 썰물인가 바다를 마주한 나, 무엇으로 이 순간을 느껴야 할는지 알지 못한다 2014. 6. 19.
[자작시]식권 입김 유난히 하얀 겨울밤, 그 밤 더욱 진해지는 고물차 아래, 고백컨대 참으로 맛있어 보이는 고양이가 있었다 채 자라지 못해 야들야들한 살결이 고래와 같은 배고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틀, 천천히 쭈그려 앉는데 어디 멀리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취한 남녀의 실갱이 소리가 치닫았다 으르렁대는 먼 배고픔을 들으며 주머니 속에서 잔뜩 곱은 손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아무리 온기로 적셔도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마지막 식권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차 밑에 웅크린 배고픔이 나를 마주하고, 나도 배고픔을 마주하는데, 손뼉치고 핥는 소리를 내도 결코 나올 줄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다시 한 차례 배고픈 비명이 도시의 계곡을 뒤척이게 만들 때, 나는 허기를 잊었고, 나의 패배를 깨달았다 생을 부지하기 위한 굴종.. 201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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