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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드 사이클)

회장직에서 물러나며(방앗간 크루 그리고 피그말리온 효과)

by 통합메일 201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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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말하자면, 방앗간 크루는 2015년 1월 달에 충동적으로 만들어진 자전거 소모임이다.


처음에는 두 명의 회원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5명으로 수가 불었다.


250%의 증가율은 창립멤버로서 매우 경이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모임이 나름의 정기성과 결속성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회장으로 추대되어 감투를 썼다.


그냥 장난삼아 대장 대우를 해준 것이지만, 나름 책임감과 철학적 방향성을 가지고 임했고


또 은연 중에 그때그때 대장이라고 불러준 구성원들에게 뒤늦게나마 진심어린 감사를 적는다.


이젠 타지로 발령을 받아 청주를 떠나게 되면서 아무래도 정기적 라이딩이 힘들 것 같아


역시 자연스럽게 회장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반 년이라는 시간 동안이었는데 제대로 영향력을 행한 것은 3개월이 채 못되는 것 같다.


그 전까지는 그냥 단 둘이서 타는 것에 불과했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래서 퇴임에 즈음하여


단상을 남겨두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되어 몇 글자 적어본다.




앞서 말했듯 크루를 조직하고 라이딩을 기획하고 모임을 가지면서


나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임했다.


자전거라는 것을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달리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얼마나 언제 달릴 것이냐 하는 다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기 떄문이다.




어렴풋하게 나마 내가 원했던 것은 일단 '단체 라이딩'이었다.


주말에 모여서 근교를 달리는 것은 물론이요, 기량이 늘면 장거리도 달리는 라이딩이었다.


방금 금강종주 군산 투어로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당초의 목적은 확실히 달성했지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업힐'이다.





모두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피반령'


종주길에서 끌바를 하게 만들었던 크고 작은 언덕들


우리 크루는 확실히 대장인(ed) 나부터 업힐에서 극도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어쩌면 빈약한 천부적 능력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아직 기량을 올릴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제목에 적은 피그말리온 효과다.




자성예언효과라고도 하는 이 이론의 핵심은,


'기대'다.


원래는 학생을 향한 교사의 기대가 학생의 성취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교단 입성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문득 이 이론이 생각났던 것 같고


나아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타인이 행하는 기대도 중요하지만,


역시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기대 역시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우리는 훌쩍 커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존재들이기 때문일까


다른 누군가에게 나의 포부를 위한 기대를 요구하기에는 우린 너무 늙어버렸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이들이 우리 스스로를 포기했을 때


자신을 구할 기대를 해줄 존재는 우리 스스로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대를 기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매우 감사한 일)





결국 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데,


기대와 망상, 혹은 꿈과 망상 사이에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애나 어른이나 그것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나중에 스승이 되어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그것이다.


망상과 꿈의 미묘한 차이.


단순히 현실성과 구체성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차이인데..


망상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꿈과 기대를 갖기 위해서는


역시 내가 지향하는 이들이나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진짜 소설가 혹은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사람, 그리고 문학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긴장과 기대 역시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내가 소설을 쓴다고 자만하거나, 소설가 지망생이라고 우쭐대거나, 문외인들을 경시해선 안 된다.


그럼 쉬이 지치는 일 없이 지속적으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전거를 잘 타고 싶다면, 프로 선수들이나, 동호인들을 통해서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긴장과 기대 역시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만 자전거나 현재의 기량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럼 쉬이 지치는 일 없이 지속적으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쯤에서 나는 원초적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왜 잘 해야 하는가?"


"그냥 즐겁게 샤방샤방하게만 타면 안 되나? 꼭 그렇게 기를 쓰고 달려야 하나?"





이런 질문을 학생들은 이렇게 던질 것 같다.


"왜 공부를 잘 해야 하나?"


"왜 대학에 가야 하나?"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 그냥 적당히 대충 살면 안 되나?"




몇 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1.높이 날 수 있고, 높이 날아본 새가 한가로이 낮게 나는 것과


그냥 낮게만 날 수 있는 새가 엄연한 차이가 있듯이


열심히 살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사는 것과,


그냥 적당히 살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2.그냥 설렁설렁 대충 달리기엔 지나치게 아까운 것들의 종류


-니 몸, 니 자전거, 니 청춘, 니가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세상




업힐은 힘들다. 하지만 업힐만큼 다운힐에 대한 완벽한 보증은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자전거만큼 생의 원리를 몸에 잘 각인시킬 수 있는 운동도 없다는 생각이다.


4년 전의 사고로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못 할 줄 알았다.


1년 전의 부상으로 왼쪽 무릎을 못 쓰게 될까봐 엄청 걱정했다.


1년 전만해도 나는 내가 이렇게 사람구실을 하면서 자전거를 신나게 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나의 한 스승께서


너 이번에 꼭 붙어야 한다,고


술자리에서 툭툭 던지던 그 기대 몇 마디에 가슴이 벅 차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꺼냈다.


그런 스승, 그런 크루 리더가 되고 싶었는데


잘 해왔는지,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취임식을 하고, 회장직의 상징이라며 펌프를 양도하고


시원섭섭 그뿐.


이젠 라이딩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젠 크루들 용품 챙겨주지 않아도 되겠지.


이젠 업힐 타라고 성화 부리지 않아도 되겠지.


이젠 선두에서 수없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겠지.


앞으로는 최회장의 철학이 크루를 이끌 것이다.


방향은 다를 수 있어도, 기량은 차고 넘친다.





멀어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겠지만,


억지로라도 오지랖을 거둬야지 싶다.


우리는 지금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을 지나가고 있다.





남은 날도 때로 크루의 선두에서 맞던 바람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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