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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김정환
최초의 기억은 네 살
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
출생 전날 나는 대체 몇 병이나 마셨던 걸까
어머니 뱃속 어디에 그 많은 술이 있었나
유년시절에서 그 이야기만 쏙 빼주신 부모님의 배려란.
사랑하는 당신이 서운함이라고 써내놓은 것들
왜 이렇게 생소하게 보이는 걸까
이제야 좀 눈에 익어가는구만
고장 난 카메라 같은 내 얼굴 앞에서
당신은 그만 한숨을 푹 내쉰다.
오랜 추억을 돌아 나오는 길
끝까지 붙잡지 못하고
결국 마지막에 기억을 놓쳐버린 이는
아마도 남들보다 유난히 많은 기억을 짊어져야 했던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배웅해야 하는 날
우리는 기억할 수 없는 시간도 함께 떠나보내지만
그들을 닮은 또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면서
마침내 조금씩 갚아나가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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