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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걸어 다니는 나무

by 통합메일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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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나무>

 

김정환

 

유령처럼 캠퍼스를 부유하던 나는 문득 아마존의 밀림에 서식한다는 걸어 다니는 나무를 떠올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일 년에 몇 미터씩 이동한다는 나무였다 그것은 다리가 아파서였는지도, 아니면 한 낮의 나른함이 지나치게 무거워서였는지도 모른다 불규칙하게 변해가는 인생의 동사들을 외워가면서, 내 마음 속에 한 번도 존재해 본 적 없는 규칙성을 투박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 아무도 모르게 그 나무를 찾아보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어쩌면 그 나무가 내 근처까지 오지는 않았을까 뿌리를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를 부지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그 나무는 지각생의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모두가 사라져버린 등굣길에서, 노인들이 자신의 인생을 분갈이 하는 아파트 화단에서 그 나무를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이다 뙤약볕 가득 찬 어느 하오에 그도 나를 보며 반가워 해주련가 서로의 뿌리를 맞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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