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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불치병

by 통합메일 201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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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김정환

 

TV를 틀면, 라디오를 틀면 속삭이는 목소리 들린다

조근조근한 손가락이 칙칙한 허공을 가리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병사했다고 알려주었다

보이지 않는 그곳에 불치에 거꾸러진 이들의 빈자리가 있었다

허전한 공명음은 우리 삶의 배경음악이었다.

탁주로 떠넘기는 떨림에 취해 나는 울었다

몹쓸 병, 함께 하고 싶어서

몹쓸 병, 자유롭고 싶어서

몹쓸 병, 행복하고 싶어서

몹쓸 병, 사랑하고 싶어서

불치병, 약도 없어서

불치병, 결코 나을 수 없어서

겨울밤 이불 속에 웅크려 제발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찢어지는 기침으로 아침을 꿰메며 죽도록 살고 싶었다

봄의 햇살에 눈을 감으면 가슴 속 구멍에 빛이 고였다

빛이 고였다 빛이 고였다 마르지도 않고 빛이 고였다

뜨겁게 익은 눈물이 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몹쓸 병, 불치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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