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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철학

영화배우 김여진씨의 블로그 포스트 '너에게..'를 읽고(홍대 파업과 관련하여)

by 통합메일 201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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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http://kimyeojin.tistory.com/26 (김여진씨 블로그 포스트 '너에게..")


집에 TV가 고장이 났다.

물론 아빠방이랑 엄마방에 TV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 방이기도 하고..

그 동안 주욱 TV라는 매체는 '집'이라는 공간의 '거실'이라는 곳에서 봐오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별로 즐기지 않았던 TV를 이제는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밥 먹을 때 잠깐 뉴스 채널을 돌려보는 십여분이 고작인 것 같다.


새해가 밝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어쩌다보니

바깥 발걸음도 점점 줄어든다.

결국 책상에 앉아서 틈틈히 살펴보는 트위터가 나의 주된 정보원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엿본다.


진중권씨의 트윗을 따라서 영화 배우 김여진씨의 블로그를 들여볼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배우 김여진이 누군지 몰라서

미국 드라마 LOS를 찍은 배우 김윤진과 헷갈리기도 했다.

글을 다 읽은뒤에 찾아보니 전혀 다른 인물이더라.


며칠전부터 트위터에 올라오는 외침들을 통하여

본의든 본의 아니든 나는 홍익대학교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인 청주의 청주대학교에서도 파업이 있었기 때문에 연상작용 때문에 조금 더

잘 기억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역시

'파업'이라는 단어가 다소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정확한 경계선 위에 놓여져 있는 단어이기 때문인지

사람들의 의견이 꽤나 갈리고 있었다.


물론 나의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팔로우 한 이들 대부분은

홍익대를 비판하고 근로자들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아무래도 '다원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혹은 누군가의 마음 속에는

그들에 대한 다른 시선, 이를 테면 불만 같은 것들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십몇년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들게 되는 것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살펴본 것을 좀더 이야기하자면,

일단은 여타의 다른 파업과 다른 점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있고, 사용자가 있으며 그 고용형태와 근무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이

일종의 단결과 불복종을 가져온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공간적 배경이 '학교'인 만큼 여기에는 '학생'이라는 존재가 결부되게 되었다.

일반적인 파업의 경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사회의 소비자라고 한다면.

이번 경우에는 '학생'이 바로 그 객체가 되며,

또한 '학교'의 자율적 운영에 어느 정도 권리를 갖게 됨으로써 객체인 동시에 주체가 되는 상황이 아닌가 했다.



그래서 보아하니.

새로운 시각.

즉, 학생들의 입장에 대한 비판과 옹호가 슬금슬금 이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걔, 권리와 의무, 그리고 학생 의식, 주권, 피해, 학습권 뭐 그런 단어들..

어떤 이는 젊은 학생들이 정말로 중요한게 뭔지도 모르고 철 없이 놀아난다고 불평한다고 비판했고.

어떤 이는 엄연히 그들의 학습권이 있으니 그들의 권리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대강 그런걸 보던 중에..

김여진씨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일단은 김여진씨와 김윤진씨를 혼동한 영향도 좀 있는 듯)

이내 곧 기대 없이 뭔가 거대한 걸 맞이해야 했다.


홍익대학교 학생회장에 대한 관찰자적 시각에서 적은 글이었는데,

슬픈 글이었다.


그러니깐.

다른 점이 있다면.


슬퍼하고 있었다는 것.


비판하거나, 옹호하지도 않고..


열심히

슬퍼하고 있었다는 것.

누군가 이렇게 슬퍼해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아니었나 하고,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는 마음의 페이지를 몇번이나 거푸 넘겨보며

나는 그저 이렇게 적을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물론

그 글에 마저 달린 댓글들은

또 다시 누군가를 비판하고, 비방하며, 옹호하고, 맞받아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 댓글들이 떠받치고 있던 본문이 더 숭고해보인다랄까.



김여진씨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아는 게 없다.

영화에서는 종종 봤구나. 채식주의자.

또 뭐있더라.. 그 김명민씨 나온 하지원씨 나온 영화에서 의사로도..

그냥 배우였고,

음.. 저런 연기를 하는 사람이구나. 저런 얼굴과 저런 목소리를 가지고 저런 몸짓을 하는 구나.

정도의 사람이었으나.



덕분에 토요일 오후에 잠시나마.

그대가 슬퍼해준 이 땅의 '젊은이'라는 범주에 몰래 기어 들어가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탓하지도.. 섣불리 편들어주지도 않고

그냥 슬퍼만 해줘서.

'미안하다고'해줘서.

그래서.



그 말이 참 듣고 싶었다고.


어쩌면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따금 그런 말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을 한다고.




모쪼록.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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