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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정치론화론

조교일기, MT는 날 각성시켰지, 비애의 알고리즘

by 통합메일 201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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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가 된지 어언 두 달


공식적으로 임용된지는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났다.


곧 두 번째 월급을 받을진대


음..


돌아보면 초반의 나는 아무래도 조교로서의 각성이 부족했지싶다.


고시생으로 생활했던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거진 성장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나이 30, 현 1학년들과는 11년의 터울을 가졌으면서도 뭔가 그들과 함께 공유할만한 것들이 적잖을 것이라고


어쩌면 없진 않을지는 몰라도, 상당하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러던 것이,


엠티를 갔다와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 것 같다.


조교로서 참가하는 MT는 학부생 신분으로 가는 MT와는 차원을 달리 했다.


학부생 때는 학생회장을 할 때도 이래저래 애들과 교수님과 조교 선생님을 챙기는 일이 버겁긴 했어도


외롭진 않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조교로서 가는 엠티를 무척이나 외롭다.


외로운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외로움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규정한 채로 30년의 시간을 보내왔는데


이제는 그 동안 외면했던 외로움들을 빚의 형태로 청산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하는가 했다.


다만, 또 하나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슬픔은


그러한 외로움조차 온전하게 경험하기가 힘들다는 것.


그러한 감정에 충분히 촉촉하게 영혼과 감정을 적시기에는 나는 제법 어른이었다.




그렇다면 이도저도 아니고.. 그 무언가 내가 집중을 하고.. 전념을 하고 소중히 할만한 것을 찾아야 할진대


다시 말해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이제 가치의 문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인데..


어느새 나는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만 것 같다.


연애와 결혼이 시급하기는 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배우자감을 생각해두기는 하였다.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겠지만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게 또 그렇게 이상적인 방식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엄습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연애를 돌아볼 때,


아무래도 나라는 캐릭터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지극히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







정열적인 사랑으로 시작해서, 나이가 차고 연애의 횟수가 거듭될 수록 나는 은은하고 성숙한 사랑을 지향했다.


순간에 불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그러한 지향과 노력이 어느 정도의 결실은 이루었으리라.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뭇 연애들이 결국에는 허무로 귀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랑', '연애', '결혼' 같은 개념들을 꺼내들면 덩달아서 '굳이'라는 단어가 함께 딸려 올라오는 것이고..


'부질 없다'라는 진부한 표현을 애써 피하려고 해봐도, 


어떤 연애든지 결국에는 실망과 부끄러움만 남길 것 같은 확신은 돌아올 계절에 대한 그것과도 같았다.



철쭉을 봤다
철쭉이 피면
봄도 만개라
이제는 활짝 열렸던
봄의 문이 닫히니
그저 마음이 급한데
점심을 먹고
스치는 사대 잔디밭엔
샘솟는 초록와 눈이 마주쳐
그만 젖은 시선을 뿌리쳤다
어느 해라고 사랑이 없진 않았으나
어찌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연명하는 삶이 문득 실망스러웠다
나를 떠나간 그대들이 아니라
그대들 없이도 끊이질 않는 역사가
미운 나는 조용히 철쭉을 씹는다
꽃잎 한 장
그렇게 파르릉 내려앉는 봄이여
나는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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