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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철학

백지연의 끝장토론 – 레이디 가가 공연 문제 토론을 보고

by 통합메일 201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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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의 끝장토론 – 레이디 가가 공연 문제 토론을 보고


2012년 5월 12일 케이블 TVn의 토론 프로그램인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는 윤정훈, 조희문, 진중권, 황진미의 패널을 중심으로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에 반대하는 입장과 그 반대에 다시 반대하는 입장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2012년 5월에 세계적인 팝 스타 레이디 가가는 새로운 앨범 ‘Born this way’를 발매하고 월드 투어 콘서트를 가지면서 그 첫 국가로 한국을 선택했는데, 한국의 기독교 총연합회를 중심으로 그녀의 공연이 자살과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논지를 근거로 반대 의견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1.다원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의 혼동

우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희문 교수였다. 토론의 중반부까지 그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는 진중권, 황진미 패널에 대하여 “자꾸 어떤 가치를 전제로 하고 논지를 전개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건 정확히 보긴 봤다. 즉 그들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최고의 가치로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해 나간 것이 맞긴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조희문 교수가 주장한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모종의 다원주의다. 다시 말해서 자꾸 그렇게 모종의 가치를 전제로 하고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게 되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그거 다원주의와 회의주의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건강한 것은 그러한 주장과 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롤즈가 주장했던 합당한 다원주의의 사회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다원주의라고 하여 아무런 의견이 모두 다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들이 수용할만한 것들이 수용된다. 즉, 아무리 다원주의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의 말대로 진중권과 황진미가 주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라는 가치마저 의문시해버린다면 그것은 다원주의를 넘어 그냥 가치 회의주의에 다름없을 것이다. 나아가서 그저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만을 내세우며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는 것조차도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포함시키려고 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런 발언을 보면 그는 자유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의 경계선 까지’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렸다.


2.신앙과 자유

이 토론의 핵심은 성경적 가치를 내세우느냐 아니면 자유주의적 가치를 내세우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앙과 자유의 싸움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대 입장으로 나오는 윤정훈 목사의 경우에는 성경에 포함된 동성애를 금지하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동성애는 성경적 교리에 반대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그러한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레이디 가가의 공연은 거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

이에 대하여 진중권과 황진미의 경우에는 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동성애자에게 성직까지 허용하는 예가 많다고 하면서 동성애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가치에 위배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이상한 논리라는 점을 꼬집는다. 나아가 성경에 쓰여 있는 구절들은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 구약에 적혀있는 구절을 모두 다 지키려 한다면 그는 현대사회를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청소년들을 자살로 모는 것은 그런 청소년들이 동성애와 종교적 교리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좌절함으로써 마지막 선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오직 그 특정 종교 내부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레이디 가가가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 교회에 공연을 하러 오는 것이 아닌 이상, 다시 말해서 레이디 가가가 그저 대한민국의 개방된 사회에 공연을 하러 오는 것이 그 공연을 보는 것이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일임되어 있는 이상 종교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종교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공연이 대한민국의 법을 어기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 이상 그것에 대해서 어떤 제한도 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해서 미성년자들에게 부분적인 제한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볼만한 하다. 그것은 우리 미성년자들에게 음란물과 담배와 술을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이들에게는 위험성이 의심되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그 제공을 조금 연기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무조건적으로 제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위험성이라는 것이 정말로 진지하게 다가오는지 아닌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예상되는 위험성만 가지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지양되어야 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위험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위험’ 밖에는 없다.

시민 논객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자신의 자식들이 그렇게 동성애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혹은 자신의 자신이 동성애를 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에 반대하고 따라서 나아가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는데, 그것 역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성정체성은 오로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부모가 그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집착이고 욕심에 다름 아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종교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인이 숱하게 저지르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들은 관용의 힘을 빌려서 이 땅에 뿌리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교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불관용을 내세워서 자신들의 가치에 위배되는 주장들을 탄압하고, 공격적인 포교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종교적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중 잣대다.

정리하자면 중요한 것은 레이디 가가의 공연이 동성애를 조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성적 사유가 가능한 자유주의 국가의 시민에게 그런 공연을 봐서는 안 된다는,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하는 발상이며, 이런 발상은 자유주의 국가에서 정당하게 성립될 수 없다.


3.영상물등급위원회의 미성년자관람불가 판정에 대해서

진중권이나 황진미의 경우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이러한 판정을 내리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나는 이런 주장에 일견 동의한다. 사실 그들이 예로 든 것처럼 최근에 대중가요들이 줄지어서 미성년자청취금지곡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술’이라는 단어의 포함여부였던 것처럼 이 위원회의 행보에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없지 않고, 이런 인상은 이번에 문제가 되는 레이디 가가의 공연 같은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해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사안에 있어서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손을 들어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 동의라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전히 조심스러운 동의다. 아무리 선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엄연히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그것을 미성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제한하는 데 동의하는 진짜 이유는 오히려 성인들에게만 그런 공연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마음 놓고 레이디 가가 본연의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상되는 위험 때문에 미성년자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에서보다는 미성년자들에게 유해할 수 있는 요소들 때문에 레이디 가가의 공연을 온전히 즐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성인들의 자유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동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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