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교권 무엇이 문제인가
1.토론 1)현실인식 2)문제의 원인 3)해결방안 2.나의 생각 1)현실인식 2)문제의 원인 3)해결방안 |
2012년 5월 19일 KBS1TV에서는 ‘추락하는 교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 글은 그 토론의 과정을 내 나름대로 이해해본 결과를 기록하고 그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본 것이다.
1.토론
우선 토론 패널을 소개하자면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이영관(율전중 교장), 김정래(부산교대 교수, 교육학), 이숙환(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다.
1)현실인식
교원을 옹호하는 측은 교권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교원 개인의 인권과 학생의 학습권 보호가 결합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르쳐야 될 권리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은 교사의 권위를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실적인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최근 경기도 교원 명예퇴직 신청 증가율이 45% 상승했다는 것이고, 그 주된 원인이 교권 추락에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올바른 방향은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학생은 교사의 교권을 존중해야 하는데 지금은 인권만이 비정상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반대편의 이숙환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은 교권은 애초부터 떨어지지 않았다고, 지금 사회에서 무시되고 있는 것은 비단 교사들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사회의 모든 기성적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교사들이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교정이 필요하다. 사회의 아이들은 너무나 많이 변했는데 교사들은 여전히 몇 십 년 전의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또한 여전히 교원지망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있다.
2)문제의 원인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아이들이 가정에서도 대든다는 것은 가정에서의 정서적 유대가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거고, 학교에서도 그런 정서적 유대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직에 있는 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들이 교사에게 습관적으로 욕설을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교원평가제가 학생들이 교사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영관(율전중 교장)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모범교사가 학생을 체벌했다가 징계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었다고 말한다. 제도적으로 교사에게 학생을 규율할 수 있는 수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교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는 그의 발언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교사가 평소에 모범교사였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말을 들어보면 다른 모든 학생들은 그 교사를 따르고 존중했는데 어떤 미친 학생 하나가 그에게 대들었고 그 선량한 교사는 아주 선량한 의도에서 그 학생을 체벌했다가 억울하게도 징계를 받았고 다행히 교원소청심사에서 징계가 면제가 됐다는 얘기다. 이것은 교육계가 학생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낙인을 찍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신들의 ‘모범적인’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런 기준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에는 철저하게 낙인을 찍어버린다. 아마도 이것은 학생이든 교사든 구별 없이 행해지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더 약자인 학생에게 더욱더 가차 없이 가해지는 것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떤 학부모의 말을 들어보면 학생이 자신의 일기장에 ‘선생님이 너무 싫다.’고 썼다는 이유로 교사가 그 학생을 전학을 가라고 심하게 혼냈다고 한다. 그 교사의 말에 의하면 ‘나를 싫다고 하는 아이를 내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 발언의 요지는 학생이 교사를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교사가 학생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 교사들이 지나치게 높은 위치를 점유하며 교육을 하려고 하니 반항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이숙환(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은 이러한 현상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학생들은 교사를 무시한다기 보다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생들의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며, 학부모가 교권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도 학부모가 학교에 기대하는 교육방식이 교사의 그것과 엄연히 다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사가 그러한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전화를 걸어온 명예 퇴직한 교사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비해서 교사가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수단의 부재를 토로한다.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경우에도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에게 휴대폰은 꺼두라고 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대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은 그렇다면 교사에게 학생의 휴대폰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라는 말인가? 학생이 수업 중 휴대폰을 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휴대폰 쓰지 말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그건 이성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할 수 있는 아주 온당하고 정상적인 방식이다. 그에 대해서 폭력을 쓰거나 압수를 하거나 하는 것은 결국 인권의 침해일 수밖에 없다. 물론 학생이 그 교사의 말에 불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의 자유다. 학생이 다른 학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교사가 그 학생에게 뭐라고 할 권리가 주어지는가? 그것이 바로 가르칠 권리인가? 바로 이 점이 문제인 것 같다.
이영관(율전중 교장)은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교사의 역할을 학생을 잡는 것(교육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몇몇 교육감들은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을 잡지 말라고(교육하지 말라고) 하고 있거나, 혹은 잡는(교육하는) 교사를 징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는 일단 교육이라는 개념을 ‘잡는’ 개념에 빗대는 그의 교육자적 소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학생이란 응당 교사의 말에 고분고분해야 하는 인간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나아가 진보 교육감들의 이상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진보 교육감들과 진보 진영의 교육적 주장은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을 교육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교육하라는 것이고,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몇몇 교육적 방식들은 올바르지 않은 감이 있으니 그런 방법들은 지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영관(율전중 교장)과 같은 인물들에게 그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교육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그런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학생은 교사에게 얼마든지 비판하고 항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사 역시 학생을 비판하고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비판이 열려있는 관계가 민주적이고 또 자유주의적인 인격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인데 이숙환의 말대로 교육계는 여전히 과거의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이숙환(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은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아이들이 비단 교사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도 높아졌기 떄문에 교사들이 예전처럼 높은 사회적 지위와 존경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한다면 그에 맞춰서 교사들도 발맞춰서 변해나가고 상담 등의 교육적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지, 학생들을 다시 과거로 돌리자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어서 명예퇴직을 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것은 학생의 탓이라기보다는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그 개인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일례로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는 것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항의를 많이 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학원이나 여타의 사교육 때문에 바쁘니까 숙제를 많이 내주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안양옥은 숙제는 학교와 학부모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이라고 설명을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언을 보면 은근히 역시 사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우월감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공교육은 학부모와 소통을 해야 하고 사교육은 학교와 소통을 해서는 안 되는가? 대체 왜 교권 붕괴의 이야기가 공교육 쪽에서 집중적으로 나오고 사교육 쪽에서는 별로 부각되지 않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숙환(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은 최근에 교직을 단순히 직장으로만 여기고 있는 교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과거와는 달리 오직 근무시간만 채우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 밖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가도록 만들었는데,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같이 존경받고 싶어 하니 이런 교권 붕괴라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학부모의 경우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창의적 교육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창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고, 획일적인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는 이에 대해서 그런 창의성 교육 같은 것은 다 외국의 선행 사례를 우리가 분별 없이 따라가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 교육 풍토에 적절한 교육 방법을 선택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어서 엉뚱하게도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학생들을 규제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외국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하다가 또 이어서는 외국의 예를 들고 있다.
이영관(율전중 교장)은 학교에 대한 학부모와 사회의 불신이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나태하고 지식전달자에 머무는 교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를 위해서 들고 있는 근거를 들어보자면 ①자발적으로 시간외 근무를 한다. ②학습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교육적 능력을 개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근거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사태의 문제파악을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교사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사의 교육자로서의 자각과 인성부족의 문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교사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훌륭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 교사가 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영관(율전중 교장)이 예로 든 근거들 중에 그 어떤 것이 교사의 인성을 보장한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시간외 근무 같은 경우에는 초근수당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것을 근거로 든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저런 이가 교장으로 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교육계 수뇌부가 얼마나 썩어있고 무능력한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3)해결방안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교원지위향상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그리고 교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일변도로 나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서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분위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숙환(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의 경우에는 교육제도 개편을 제안한다. 교사양성과정에서 교사전문성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교육행정가와 교수전문가를 애초부터 구분해서 전문적으로 양성해야 하고 교사라는 범주 내에서도 지식전문가와 인성/생활지도 전문가를 구분해서 양성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영관(율전중 교장)은 교사 연수를 통해서 수업을 변화시킨 경험을 예로 들면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수업의 주도권을 학생에게 이양하는 노력을 통해서 수업을 혁신하면 교권 추락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이 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참 가관인데, 일단은 자신이 교장을 맡고 있는 학교의 자랑일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사태의 문제가 교사들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부족 그리고 나아가 이에 상응하는 교사들의 인성부족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학생들의 사적, 정신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앞으로의 교사들의 역할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좋은 수업을 해서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서 좋은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진학을 시키면 그것으로 교사의 주된 업무는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이 교장으로 있으니 그 학교는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천국이겠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지옥이겠으며, 많이 아는 선생에게는 천국이겠고,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권리를 신장시켜 주려는 교사에게는 지옥이겠는가?
김정래(부산교대 교수, 교육학)의 경우에는 교원 승진 경로를 새롭게 건설해서 행정가와 장학사와 교사의 진로를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하고, 학교단위책임행정을 이루어서 학교에서 정말 아무 걱정 없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초등학교 교사는 가정에서의 밥상머리 교육, 교사 업무 경감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사들의 높은 능력을 강조하면서 언론에서 극소수의 특수한 교사들의 사례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 역시도 지금의 문제를 가져온 원인이 교사들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인성 부족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의 경우에는 다시 한 번 사회적 분위기가 교원들의 편을 들어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칭송한 대한민국 교원들을 왜 우리 사회 내부의 목소리가 이렇게 비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장을 학부모가 아니라 학교장이 맡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교장의 권리와 권위를 지켜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말은 듣고 또 들어도 웃긴데 우선 사회 내부에서 교육계에 가하는 비판의 목소리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발언들을 들어보면 교육계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교육자율권의 남용 의식이 느껴진다. 다시 말해 교육계 관련자가 아니라면 교육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교육계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대한민국 교육자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져온 원인이기도 하다. 나아가 사회 내부에 존속하는 비판을 곱게 바라보지 못하는 그의 시선에서 전형적인 사회기득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썩기 좋은 고인 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인도 언급했듯이 그는 구조 기능론적 입장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 사회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고 사회 구성원들이 아름답게 협력하고 있는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런 구조에 대항하는 모든 시도들이 사회적 평화를 깨뜨리려고 하는 위험한 시도로 보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기능적 입장의 문제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썩기가 쉽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집단이 건강한 상태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내부적으로 또 외부적으로 비판에 대해 항상 열려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원리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의 경우에는 교육계라는 것을 또 이 사회라는 것을 그런 열린사회가 아닌 닫힌 사회로 인식하고 또 그 당위를 주장하고 있는 감이 있다. 또한 학교운영위회장을 학교장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학교운영위원이라는 것의 애초 설립 동기가 학교장의 독단이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위원과 교사들의 목소리를 합쳐서 다 함께 학교를 이끌어 나가자는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학교장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고 또 확장하려는 기득권의 사고방식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결국 안양옥(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이 토론에서 대한민국 교사가 아니라 학교장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생각이다.
2.나의 생각
1)현실인식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가 서로 자신들의 목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토론에서 실컷 언급된 대로 학생들은 교사의 교권을 무시하고, 교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학생들을 무시해왔고, 이제는 학부모들마저 교사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것은 역시 점점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추세에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우리 교육은 아마도 그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고, 그 사회적 현실에 적절한 교육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그 당시의 사회적 현실들이 비정상적인 것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그러한 비정상적인 것이 적절한 교육이라는 것이 정상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흔히 언급되는 서당식 교육은 봉건군주제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절의 산물이고,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존중을 요구할 수 있던 시절은 군사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의 교육방식을 생각하며 지금 이 시대에 그런 방식을 다시 회복하는 목소리를 이래나 저래나 어떻게 하든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어불성설을 생각하지 못하는 교사들의 현실 인식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2)문제의 원인
상론했든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교육계에서도 열린교육이라고 하여 ‘열린’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거기에서 언급되는 열린과 열린사회에서 언급되는 열린은 수준이 다르다. 교육계에서 언급된 열린 교육이라는 것이 그저 열린사회의 도래가 예고되는 시점에서 사회적 분위기에 마지못해 편승해야겠다는 인식에 근거하여 추상적으로 수업과 교육방식을 유동화시키는 것에 그쳤다면 열린사회라는 것은 모든 기성의 권위에 대한 비판에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평등한 가치와 권리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고방식을 갖추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신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사와 학생들이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교사에게 욕을 하는 것과 타인에게 욕을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아이들이 교사에게 욕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사람에게 욕을 하는 것이 문제다. 더 이상 교사는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그 직업의 특성상 학생들에게 특수한 존경을 받을 수는 있는 존재이지만 절대로 ‘받아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또한 공교육 교사들은 사교육 교사들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 선생들보다 학원 선생을 더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 현직 교사는 “입시위주 교육이 심화되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보다 학원에서 얻는 것이 더 많아서 더 고맙게 느껴졌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학생들이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교과적인 지식을 전수받는 것에 대해 감동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 시간에 교사와 맺는 정서적 교감을 통해 그 인격 자체를 좋아하고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육 교사들은 아무래도 사교육 현장에서는 학생과 교사 같의 정서적 유대가 전혀 존재하고 않고, 기계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굉장히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들은 사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것은 굉장한 현실착오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문제라는 것이고 그런 인간성의 차이는 교육의 현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로부터 비롯된다.
.
3)해결방안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의 교사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부심이나 우월감이나 권위 같은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의 관계는 너무나 심각하게 일그러진 나머지 어디에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모를 실정이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에 대해서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억압의 심리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교사 개개인과 교사라는 집단과 기성세대 자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에 너무나도 습관화 되어 있다. 그들의 문화에서 그런 저항의 문화는 하나의 개념 있는 행위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나아가 이런 현실에서 교사들의 현실인식이라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 형편없기 짝이 없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교육적 권위에 대한 그들의 기대치는 과거에 비해서 전혀 변함이 없는 반면 그들의 살고 있는 교육적 현실은 열린사회의 추세를 어김없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조화의 현상에 그들은 처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교육적 상식이라는 것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수업 시간에 불충실한 것, 이를테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한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비도덕적인 행위가 아닌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시간에 잔다는 이유로 모욕감을 느끼는가? 그것은 그들이 근거 없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반증이다. 사실 교사가 자는 학생에 대해서 기분 나쁠 이유는 없다. 그저 그들은 그렇게 자는 학생을 깨워야 하는 의무가 있으면 있을 뿐이다. 그 학생들은 자유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적이 없다. 때문에 그런 학생들을 비도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일단 교정되어야 하고 나아가 그런 학생들을 바로 잡는 방법 역시도 이성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을 어기는 교사가 있다면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 한 두 번의 예외가 큰 악덕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동안 학생들에게 주어졌던 체벌이라는 폭력이 지금의 악덕, 즉 다시 말해서 매 맞는 것에 익숙해져서 매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을 양산해 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나아가 교사들에게도 그런 학생들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 이를테면 학교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당한다든지, 교사에게 체벌을 당한다든지, 혹은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다든지 폭언을 한다든지 하는 경우에 있어서 폭행이나 명예훼손의 혐의로 고발할 수 있고 그런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힘을 주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직 미성년자이고, 학교라는 것은 작은 사회로서 완전히 사회와 똑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와 같은 잣대를 가져다 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공정한 권력을 투입함으로써 우리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그들의 관계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이 더 이상 무법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실 당 학생 수를 줄일 필요성잉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사교육과 공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교실 당 학생수가 아닐까 한다.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의 교실 당 학생 수는 약 33~36명이다. 노무현 정부 때 그나마 혁신적으로 줄인 인원이 이 정도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20명 정도로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사에게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주어지는 관심의 깊이와 양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런 관심의 심화가 바로 학생과 교사가 정서적 유대를 맺는 통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사와 학생의 유대는 교사의 권위 따위가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관심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교원단체를 대표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점에서 참 어불성설인데 교사의 권위와 교사와 학생 간의 유대를 강조하고 있는데 대체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나는 의문이다. 대체 그 누가 ‘두려움’의 대상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올바른 사제 간을 위해서는 교사가 우선 학생에게 ‘좋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첫 번째 걸음이 이런 학급 당 학생 수 감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실을 들리는 것과 교사를 증원하는 것이라는 아주 치명적인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때문에 다양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계에 투입되는 쓰잘데기 없는 예산을 줄인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에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서 한 단계 높은 국가 예산의 투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우리의 교육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효율적인 소비는 못 될지 몰라도 최소한 돈 낭비는 아닌, 그냥 제 값을 주고 산 성과하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끝-
'윤리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반게리온의 세계관과 니체의 영원회귀 (0) | 2012.09.01 |
---|---|
지난 주에 얻은 착상-니체의 영원회귀와 관련하여 (0) | 2012.08.27 |
내 편을 들어주는 남친을 선호하는 여성들을 이해해보기 (0) | 2012.05.22 |
백지연의 끝장토론 – 레이디 가가 공연 문제 토론을 보고 (0) | 2012.05.06 |
우리 개그가 지향했으면 하는 방향(쾌락의 질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0) | 2012.05.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