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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생판 모르는 외국인에게 돈 꿔준 사연(외국인 앵벌이?)

by 통합메일 2014.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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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보드 타다가 팔을 다쳤다;


좀처럼 낫질 않아 근무시간에 잠깐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내 직장은 대학교라서 다시 캠퍼스로 들어가서 한참을 걸어갔다.


정오가 가까워 볕이 강했던 터라 일찌감치 선글라스를 꺼내 쓰기도 하였다.


진땀과 싸우며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은 건 것 같았다.


그것도 영어로


아마도 "Excuse me?"였을 것이다.






방학에 들어간지 일주일이 다 되는 터라 마침 캠퍼스는 유난히 인적이 뜸했다.


처음엔 못 들었는데 뒤늦게 고개를 돌리니 그가 굉장히 당황해 하는 몸짓으로 나를 반겼다.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라하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땀을 흘리며..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오는 그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게 좀 후회다.


키는 한 180 정도에 백인,, 나이는 40대였던 것 같다.


그냥저냥 선하게 생긴 외국인이었다는 생각. 체격은 좋았고 좀 퉁퉁한 편이었지 싶다.


그런 그를 충북 청주시의 충북대학교에서 만났다.





<굳이 따지자면 이런 느낌인데 더 체신머리 없는 인상이었다.>

<많이 덜렁대고 당하고 살 것 같기는 했는데 그래도 착하긴 할 것 같은>



"can you speak english?"


중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체득한 문장을 내게 던지는 그였다.


사실 이 외국인을 데리고 영문과나 영어교육과에 가볼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저번에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로 묵었던 필리핀인들의 영어에 비하면 이 인간의 영어는 정말 또렷또렷하게 들리길래 그냥 some..이라고 하며 대화에 응했다. 사실은 a little이라고 해야 했었나?


드문드문 알아듣긴 했지만 그의 사연을 요약하면 이렇다.


외국인:"하.. 정말 고마워. 다행이야.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사람들한테 말을 걸었는데 외면도 많이 당하고, 늙은 사람들은 영어를 못하는 모양이더라고. 캠퍼스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주말인가?"


나:"방학이여."


외국인:"아 방학이라 그렇구나. 아무튼 나 지금 여권도 잃어버리고 신용카드도 만료되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내게 이메일과 폰번호를 알려주고 돈을 좀 빌려주면 내가 며칠 내로 연락해서 갚으면 어떨까?"


나:"응? 아.. 만료? 만료? 어허........이것 참... 그래 얼마를 원하시오"


외국인:"글쎄 뭐 싼 게스트 하우스가 2만원~2.5만원 정도 하지 않겠어?"


나:"좋아.. 알았어. 내가 지금 너한테 가진 돈 전부를 줄께."


외국인:"오 땡큐.. 이름이 뭐요?"


나:"OO"


나는 천원짜리 15장이랑 5천원짜리 2장을 내어줬다.


그리고.. 그는 내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금액을 메모했다.


나:"돈이 적어 미안해"


외국인:"better than nothing~"


나:"Good luck"


외국인:"Thank you. Good luck"







그걸 끝으로 나는 진짜 내 생애 손꼽을 만큼의 쿨함을 뒤로 하며 걸어갔다.


그리고 깊이 두려움에 떨었다.


저거 혹시 앵벌이는 아니겠지?,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20대 초반에 앵벌이꾼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3~4만원에 불과했고, 또 나는 나름 보답에 대한 탐욕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을 갖게 만드는 커다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타지에서 왔는데 휴대전화와 지갑을 몽땅 잃어버려서 좀 도와달라는 식으로 접근을 한다.


그래서 자신이 폰뱅킹으로 내 계좌에 돈을 넣어줄테니 그것을 출금만 해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고


공중전화에서 폰뱅킹을 하다가.. 보안카드가 없어서 계좌이체를 못한다는 핑계를 가지고 돈을 빌려달라는 스토리로 넘어간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게 자신의 통장 잔액을 확인시킴으로써 내게 신뢰를 얻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돈을 빌리는 레파토리로 진입을 하면 몇 번이고 계속 부모나 친구에게 급전을 융통할 수 없겠냐고 물어온다.


당시의 나는 3~4만원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CCTV에 찍힐 것을 염려하여 절대 은행이나 편의점에 따라 들어오지 않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리고 돈을 받더니 푼돈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쩐지 기분 나쁘게 걸어갔던 기억이다.


새끼, 사기 치고도 기분이 나쁘냐.






하여간 돌아와 생각을 해보니 그 외국인 역시 그런 인간일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이가 정말로 타국에 와서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막막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전에 몇 주 동안 국내 여행을 해 본 경험을 떠올려 보면 집 떠나서 돈 떨어지는 것처럼 두려운 게 없다.


그리고.. 2만 5천원 정도라... 그 정도면 그 정도의 선의에 떼여도 그만이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만약 진짜라면 좋은 일을 한 것이고, 가짜라 하더라도 나는 그게 진짜일 가능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줬을 것이 아닌가.


사기꾼 놈들 때문에 점점 사람을 믿기가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지만,


그런 현실을 대하는 자세가 있다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려 하지 않는 용기가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테면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의라 함은 그 일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나는 그가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가 진짜일 경우의 수에 의해 돈을 빌려준 것이니


의에 가까운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마음 다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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