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악의 탄생) 감상문 (선의 방관이 악을 꽃피운다.)
1.소개 2.줄거리 3.카리스마 4.인간 히틀러 5.악과 선의 방관 |
1.소개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지만 알고 보니 미국 CBS 방송국에서 2부작으로 제작한 드라마였다. 로버트 칼라일, 스톡카드 채닝, 지나 말론, 줄리아나 마굴리스가 출연한다. 전체적으로 유년시절의 히틀러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서 독일의 수장에 오르며 유럽을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게 되는지를 그리고 있으며, 그 과정의 묘사가 매우 설득력 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줄거리
히틀러는 양봉업을 하는 삼촌과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삼촌은 그가 관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히틀러가 바라는 것은 예술가의 길이었다. 유방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고향을 떠나 뮌헨으로 간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 여기저기 화랑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워낙 불경기이기도 했고, 그의 그림은 뭔가가 좀 모자랐던 모양이다. 가진 돈이 다 떨어져 노숙자 생활을 하게 된 그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독일의 금융업계를 장악한 유대인들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은 점차 독일 민족의 순수함에 대한 정신병적인 집착으로 변해갔다. 그러는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참전한 히틀러는 주로 전령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운이 좋았는지 큰 부상 없이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독일의 항복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히틀러는 좌절에 빠졌다. 가장 위대한 미족인 독일의 패배는 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군복을 벗지 않고 룀의 돌격대에서 연락책으로서 활동한다. 그러던 중에 명령으로 독일노동당의 프락치로 잠입했다가 그곳에서의 연설을 통해서 독일노동당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강력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패전과 독일의 경제공황의 책임을 모두 유대인과 사회지도층의 탓으로 돌리는 그의 연설은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는 대중을 사로잡는 히틀러의 능력을 이용해서 독일의 정치를 장악하려는 부호와 지식인들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무섭게 힘을 키워가던 히틀러는 경쟁 정당의 위인들을 협박해 쿠데타를 시도하지만 루덴도르프 장군의 실수로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히틀러는 그 특유의 탁월한 언변으로 재판관과 방청객을 매혹시켜 매우 가벼운 형을 선고 받았고, 오히려 그로 인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게 되었다. 때문에 감옥에서의 생활도 매우 편안했다. 간수들은 존경을 다해 그를 대우했고, 제한 없이 방문객을 맞을 수 있었으며, 비서도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힘을 재건했고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출감 후 일단 그는 이복누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물렀다. 또다시 실수를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껏 몸을 움츠리고 정치권의 동향을 살폈다. 그곳에서 그는 조카인 겔리를 연모하게 된다. 히틀러의 인기는 여전했지만 그가 떠난 당의 힘은 땅에 떨어졌다.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뮌헨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한 그는 조카와 함께 복귀한다. 그가 떠나있는 동안 새로운 인물들이 성장한 당은 그를 반신반의 했지만 그는 결국 새로운 선거에서 당의 의원직을 대폭 확대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모든 것이 순탄대로를 달리는 동안 그의 조카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지나친 통제에 숨이 막혀 그만 권총으로 자살을 한다. 비어있는 그녀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에바 브라운이었다.
이제 독일에서 누구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히틀러지만 딱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대통령인 힌덴부르크였다. 히틀러는 당의 의원들로 하여금 국회를 파행시키게 하여 대통령이 자신에게 수상직을 부여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힌덴부르크는 그렇게 하면 독일을 히틀러의 손에 넘기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버텨보지만 결국에는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대통령이 사망하게 되면서 독일 수상 히틀러는 국가 비상체계를 선언하고 국가의 모든 권력을 그 자신에게로 집중시켰다. 이어 그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언론인들이나 지식인, 유대인, 여호와의 증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함과 함께 2차 대전을 일으킨다.
3.카리스마
이 영화에서 매우 인상 깊은 요소들 중에 하나는 바로 히틀러의 카리스마다. 매우 지질하게 묘사되는 청년기까지의 그의 모습과 비교해서 연설의 맛을 찾아가는 그의 확연히 달라지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시원하게 이어져 나가는 문장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표정과 손동작 등은 히틀러가 인류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는 나조차도 그 영상에 매료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분하게 시작하는 듯 하더니 어느새 격정적으로 변해있는 억양, 결코 끊어지지 않는 문장들과 대중들의 광기를 날카롭게 잘라서 정확한 목표로 발사하는 것 같은 손동작들은 조금의 부조화도 없이 완벽하게 대중을 매료시켰다. 이른바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정치인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카리스마적 권위를 그는 누구보다 완벽히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4.인간 히틀러
이 작품은 단순히 히틀러의 만행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의 성장과정과 그의 사생활에서 묻어나는 심리묘사를 통해서 그를 비교적 인간적으로 이해하려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그는 사실 평생을 외롭게 살아간 인물이다. 그나마 그를 이해하고 사랑해준 어머니가 있기는 했지만 그가 청년기일 때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로 그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영화 속 그의 모습을 보면 그는 아마도 정상적인 사랑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을 보면 동료의 아내라든지 이복 조카 같은 사람들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만나는 에바 브라운이 가장 정상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인데, 히틀러는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게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외로움 속에 갇혀 사는 그의 모습은 대중의 열렬한 환호 앞에서 극명한 대비로 더욱 뚜렷해진다. 수많은 군중의 인기를 누렸지만 기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는 내가 그에 대해 모종의 인간적 동정심을 느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 이와 관련해서 의미심장한 대사가 있다. 극중에서 기자인 프리츠 게르리히는 히틀러를 보면서 그는 인간이 아니라고, 그저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그는 정말로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감정을 너무나도 제대로 파악해서 그것을 흉내 내고, 대중의 광기를 다루는 법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과도 같이 이 대사는 히틀러라는 인물을 악마 혹은 악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것 같다. 분명히 대중의 관기를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고,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히틀러라는 인물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잔인한 짓을 저지른 악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남는 것은 악마로서의 히틀러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히틀러인 것 같다. 그것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그가 아직 완전히 악마가 되기 전의 일들, 그가 악마가 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5.악과 선의 방관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선의 방관이 악을 꽃 피운다.(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버크는 현대정치 철학에서 전통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는데, 정치사회는 사회계약이 아니라 관습과 전통의 산물이라는 주장, 자연적 권리의 평등의 원리에 대한 거부, 천부적 평등의 부정, 이성이 아닌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강조, 유기체로서의 사회제도와 같은 것들로 유명하다.
이 문장과 앞서 언급한 히틀러의 인간적 면모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히틀러라는 인물이 처음부터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완벽한 악은 아니었다는 것, 나아가 그가 진짜 악이 된 것은 비단 그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 선의 방관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견지에서 바라볼 때 유년시절의 심술쟁이 히틀러, 피해의식에 절어있던 청년기의 히틀러는 단지 악의 씨앗 혹은 악의 가능성에 불과한 존재였다. 순자 식으로 말하자면 생득적으로 악을 결과할 수밖에 없는 성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화성기위를 통하여 성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는 그러한 화성기위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작품 속 그의 주변에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재능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독일 노동당의 당수 안톤 드렉슬러, 룀, 한스슈탱글, 루덴도르프 등 각기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히틀러에게 접근했다. 만약 히틀러가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그들의 이용을 그냥 방관했다면 그는 그저 인상적인 연설가나 선동꾼에 머물렀을 것이고 그것이 그에게나 인류에게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신으로부터 자신을 반성하는 능력과 주위의 상황을 신중하게 파악하는 능력, 대중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이용에 순순히 응해주던 히틀러는 천천히 하나씩 그들의 목을 조여들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하여 히틀러라는 악의 씨앗을 방관한 결과 그 지식인들이나 대중 모두 독일 총통 히틀러라는 악의 완성태에 잡아먹히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의도하고 있는 바는 히틀러라는 악의 완성태를 탄생시킨 원인이 그 악의 가능태뿐만 아니라 선량한 군중의 열정과 혹은 가진 자들의 사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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