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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늑대아이> 영화 감상문

by 통합메일 201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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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아이> 영화 감상문


1.소개

2.줄거리

3.귀여움

4.자연과의 친화

5.정체성과 부모의 마음


1.소개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아이(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와 <썸머워즈(2009)>로 우리에게 친숙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9월 13일에 개봉했다. 사실 호소다 마모루라는 이름을 듣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명확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나서 연관되어 나오는 작품들의 이름을 보았을 때는 잃어버린 고기가 한 번에 연결되면서 각 작품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배우인 ‘미야자키 아오이’가 주인공인 ‘하나’의 목소리를 담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일단 다소 무리하게까지 보이는 하나의 사건을 전제로 깔아놓고 그것에 기반을 둔다면 충분히 있을만한 일을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늑대인간’이다.


2.줄거리

주인공 ‘하나’는 도쿄 인근의 국립대를 다니는 여대생이었다. 평범한 여대생인 그녀는 강의실 한 켠에 늘 외롭게 앉아있는 한 남학생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그녀는 그에게 접근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사실 그는 늑대인간이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녀가 자신을 떠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와는 달리 그녀는 그러한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 아이는 딸이었고 이름은 유키다. 둘째 아이는 아들이었고 이름은 아메다. 각각 눈과 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눈이 내리는 날에 태어났고. 둘째는 비가 오는 날에 태어났던 것이다. 행복한 나날이었지만 둘째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아빠는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엄마인 하나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생활이 가능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위의 시선 때문에 생활에서 곤란한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도시를 떠나 산 속 시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인적이 뜸한 그곳에서 그들은 제법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녀는 농사를 지었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하지만 이내 곧 정체성의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늑대의 피와 인간의 비가 동시에 흐르고 있었고 그들은 인간의 길과 늑대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딸은 인간의 길을 선택했고, 아들은 늑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3.귀여움

이 애니메이션은 실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이전 작품들도 비교적 일상의 소소하고 다양한 모습들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맛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그런 시도가 급을 달리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중의 하나는 바로 ‘귀여움’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상영시간을 통하여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데 그 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이들의 유년시절이다. 동그랗고 커다란 머리에 짧은 팔다리를 가지고, 틈만 나면 인간과 늑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남매를 바라보고 있는 일은 그 귀여움에 가슴 깊숙한 곳이 아려올 정도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활동적인 누나 유키의 유년시절은 예쁘기 그지 없다. 기저귀를 찬 채 빨간 원피스를 입고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몇 번을 다시 회상하여도 가슴 속의 아림이 무뎌지질 않는 것이다.


4.자연과의 친화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요소들 중의 하나는 바로 자연에 대한 고찰을 작품 내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를 들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저지르는 무분별한 자연 개발이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다시 돌아오게 되니 부디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엄숙한 경고를 애니메이션의 형태를 취하여 인간에게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반면에 이 <늑대인간>의 경우에는 인간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기 보다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갑갑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의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이 가족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러한 비전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작정이라도 한 듯이 실감나게 그리고 조금은 과장되듯 아름답게 그려지는 자연풍광 역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자연친화적인 제안이 우리에게 더욱 효과적이고 또 한편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시골로 간 하나의 가족이 상당히 서툰 상태에서 모든 것으로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그 가족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하나’라는 인물은 많은 면에 있어서 서툴다. 농사를 짓는 일도 그렇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도 그렇다. 게다가 그녀의 아이들은 평범한 인간의 아이가 아니라 반인반수의 존재들이었다. 어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굉장히 절박한 상황에서 거듭된 실패가 그녀를 좌절시키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웃어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살갑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도와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장 퉁명스러웠던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감자 농사를 짓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그녀의 가족들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 감자를 수확한 하나가 마을 사람들에게 수확한 감자를 돌리러 다니는 데 감자를 받은 사람들마다 답례라도 하듯이 무나 쌀 등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과연 시골 인심이라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 공통인 모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5.정체성과 부모의 마음

이 영화의 중핵을 가로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뭐니뭐니해도 ‘정체성’이라는 화두가 아닐까 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두 남매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감독이 만든 전작들을 보면 확실히 비슷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데 물론 그 경우에도 ‘정체성’이 중요한 화두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개 공통적으로 ‘철학의 경계’을 발견하고 그 영역에 한 다리 정도를 걸치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듯 한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경우에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채택하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데,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실수를 교정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지적하고 있는 이 작품은 나로 하여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었다.

아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아이들보다는 우선 엄마인 하나가 직면해야 하는 시련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런 아이들이 향후 직면하게 되는 정체성의 갈등을 엄마로서 누구보다도 자명하게 예상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일종의 용단이 필요했다. 그러한 용단이 곧 아이들이 일단 근심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일이었다.

확실히, 두 남매가 직면하게 되는 정체성의 갈등은 매우 특별한 것임에 틀림없다. 늑대와 인간의 혼혈로서, 늑대 혹은 인간의 모습과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했고 또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영화를 접하게 되는 우리 역시도 그러한 정체성의 갈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바, 그리고 오히려 철저히 예속되어 있는 바, 그리고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것을 이미 지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갈등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인 바, 이들 남매가 경험하는 정체성의 갈등이라는 것은 기실 우리의 삶에 포함되는 정체성의 갈등을 극단적인 형태로 형상화 해 낸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가능하리라 사료된다.

즉 이들 남매가 가지고 있는 ‘혼혈’이라는 특징은 곧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우리 모두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온 소리가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대사가 청자의 자아효능감을 증진시키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겠으나, 또 한편으로 유년 시절의 우리가 아직 미정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마주하며 존재했었다는 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결국 복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와 이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늑대아이 남매 사이에 존재할만한 차이점이라는 것은 제로(0)로 급속히 수렴된다. 결국 문제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그 자아가 추구하는 ‘가치’에 의해 이루어진다. 새삼 언급하기엔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할 때는 형언할 수 없을 만치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남매는 각각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갈등을 경험하고 또 해결해 나간다. 누나인 유키는 또래의 아이들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제거해 나가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막다른 벽에 막히고 만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인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잘 극복하고 그 친구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정체성의 갈등을 완전히 졸업하게 된다.

반면 동생인 아메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제거하기 보다는 그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인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한 차이들을 아무리 부정하려 해봤자 그것은 극복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을 그는 일찌감치 알아차린 듯 했다. 결국 그는 산 속으로 들어가서 늑대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미묘하고 섬세하게 그려지게 된다. 특히 동생인 아메가 동물원에 갇힌 늙은 늑대를 찾아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구하는 장면 등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의 결단에 의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남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애니메이션의 진짜 주인공을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엄마인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이다. 그녀야 말로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보는 동시에 그녀가 소녀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꽃피고 성숙해 가는 ‘부모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마음속에 남은 인상들을 쓰다듬어 하나의 문장을 추려 낸다면 ‘아이가 엄마를 키운다.’라는 것이 될 것 같다. 미숙했던 소녀가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옥신각신 하며 점차 성숙해 나간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그녀는 노련해졌으며, 여유가 생겼고, 씩씩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다 컸다고 여기더라도 어디까지나 아이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들 아메가 결국 인간이 아닌 늑대의 길을 선택하여 산 속으로 들어갈 때 그녀는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훌쩍 커버린 아들 앞에서 그녀는 더 이상 엄마로서의 강인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네게 아무것도 해주질 못했어.”


이 문장이 가뜩이나 앳된 미야자키 아오이의 목소리를 입었을 때 이 영화는 완성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주고도 더 주고 싶고, 더 주어야만 할 것 같아서 결국 아무것도 준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관계를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몇 번이나 경험할 수 있을까?


되려 그런 숙제를 남기는 애니메이션이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천만다행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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