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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일베는 가깝고, 이상적 의사소통 상황은 멀다.

by 통합메일 201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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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는 가깝고, 이상적 의사소통 상황은 멀다.


 

이성과 감성이 등을 맞댄 존재임을 확인할 때가 있다. 논리에 어긋나는 글을 읽을 때와 매우 논리적인 글을 읽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결코 같지 않다. 그것은 아마 인간에게는 논리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최근 논란이 되는 일베에 대한 문제에서는 나는 감정의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일베에 대한 세간의 반응을 접할 때 내가 느낌 첫 번째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공식적인 지면에서 이루어지는 비판들에서는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일베와 대척하고 있는 일반인들의 모임에서는 거부감을 느꼈다.


두 번째의 불합리는 나는 일베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쾌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익히 알려진 일베인들의 악행에 반대하고 그런 것에도 불쾌함을 느낌에도 그 대척점에 서 이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은 이 어딘가에 불합리한 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베를 까는 글의 구조는 우선 일베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 캡쳐, 기사, 주장들을 게시하고 그 밑으로 댓글이 주욱 달리는 형식을 취한다. 대부분 한탄 섞인 조롱이나, 조롱 섞인 한탄이다. 나는 여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판이라기보다는 조롱, 비난, 한탄이 대부분이다. 사람이 아니라느니 벌레니까 박멸하라느니 하는 조롱이 대부분이다.


또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열린 대화의 장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베를 향한 조롱에 제동을 거는 의견에 대해서는 더 일베충 아니냐는 사상검증이 가해진다. 물론 진짜 그 사람이 일베인일 수도 있지만 설사 아니더라도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그런 의심을 던진 사람은 좀처럼 사과하는 일이 없고, 누구도 그를 비판하지 않는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지게 되고, 그만큼 소수의견의 묵살당하고, 아예 애당초 표현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과거 공안 정국 때 사상범을 체포하고 퇴출하는 사회일반의 분위기가 연상된다면 나의 기우인가?


괴물과 싸우면서 결국 괴물이 되어간다는 말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일베의 평행이론이라는 망상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본인들은 극구 부정하겠지만 원래의 괴물이 사라지면 다음은 그들의 차례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수의견이 멸종에 이르게 된 상황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일베를 비판하면서도 합리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있다. 하지만 일상의 영역에서 마주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런 이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비합리가 또 다른 비합리를 합리성의 기치로 공박하고 조롱하매 나는 불쾌하다. 일베인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이라고 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그럴 수 없어 저들끼리 모여 자신들은 전혀 다르다는 듯 희희덕 거리며 자위하는 게 일인 것 같아 나는 불쾌하다. 소통의 의지 없이 진영에 똬리를 튼 채 상대를 비방하는 일에 몰두한다.


비방을 위한 비방, 조롱을 위한 조롱, 의미 없는 한탄. 다르긴 하되 얼마나 다른가?


 


일베는 가깝고 이상적 의사소통 상황은 멀다. 2013.06.08. 토요일 저녁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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