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훈훈한 불편함

by 통합메일 2013. 6. 11.
반응형

훈훈한 불편함


훈훈함에 목이 마른 세상이다. 맥락을 짚어보니 이것 참 잔뜩 엉킨 실타래다. 세상 여기저기에서 <훈훈한 광경>이라는 것을 마주한다. 나에게 그것은 거대한 벽과 같은 것이다. 물론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다. 때문에 이 맥락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 맥락이 내게 불편함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훈훈함이 아닌 것이다. 나의 의심이 닿은 곳은 <이미지>의 문제다.


그러고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무수히 많은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상 그 자체 역시도 이미지이고, 심지어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고 역시도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미지는 상당히 다양한 기능을 한다. 모든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암기하여 인식하는 대신, 기존에 갖고 있는 이미지들을 조합한 또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외부세계나 자신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방식은 정확한 지식을 추구하는 측면에서는 다소 그 역량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 암기력 이외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해하도록 해주면서, 세상 이해를 수월하게 해주고, 주관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고, 예술적 창조에 필수적인 영감들을 제공하며, 그러한 이해와 영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교감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것은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이미지가 가진 특유의 인식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합리적 이해를 도외시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훈훈한 광경이라는 것들로부터 느낀 불편함은 이러한 이미지가 가진 부작용일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여기서 언급되는 <불편한 광경>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자의적으로 규정된 사회계급의 구도를 약자들과 강자들이라는 보다 더 단순화된 구도로 변화시키고 그로부터 정의라는 이미지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이미지는 기존에 존재하는 구도를 완전히 역전시키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러한 이해는 기존의 구도가 가진 세력의 정도를 극단화하는 방식으로 이미지를 완성해간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감정이입을 통하면 기존의 이미지와 새로운 이미지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도약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구도를 완전히 전복시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것이다.


구도와 기존 이미지의 극단화를 통해 이렇게 새로운 이미지의 구도가 완성되면 그 동안의 신중함이나 망설임은 가치를 잃게 되고 무관심보다는 관심이 또렷해진다. 리얼리즘에 입각해 마치 사진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그림이 있다면, 뭉뚱그림과 극단의 강조를 사용한 인상파의 그림을 그 위에 덧칠하는 셈이다. 물론 내가 인상파 그림의 작품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미지>라는 것이 교육, 문화, 예술 등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럴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접을 수가 없다. 우리사회가 정치세력에 대해 가지는 주관적 이미지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자극적 이미지보다는 중성적인 합리성, 즉 무표정한 의무주의에 입각한 시민정신을 통해서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3.6.6 현충이라 묵념하라고 사이렌이 울리지만 나는 반국가주의자지롱.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