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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당연한 자유, 이상한 의무 (병역의 의무를 '지극히' 당연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by 통합메일 201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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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자유, 이상한 의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생명, 사회, 권리, 의무, 죽음, 전쟁, 평화. 구조와 환경에 대처하는 인간의 적응능력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만 변화를 게을리 하여 그것이 흡사 영구불변의 것이 아닐까 생각할 틈을 보이노라면 망설임 없이 그것들을 당연 하시하도록 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삶은 여태까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고통이 찾아올 대면 지금까지 누렸던 평안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다. 전쟁을 맞이하면 당연했던 평화는 가족과 같은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목도할 때 나는 우리 사회에서 당연함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유(권리)보다는 의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상의 영역에서는 자유를 당연시하며 그것을 남용하지만 공론의 영역에서는 의무를 당연시 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 조세의 의무, 준법의 의무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한 의무들은 보통 공적영역에서 활동하고 언급되는 소위 공인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도덕성을 공격하여 그 자격의 인정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도구로 작용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용도에 있어 그 의무라는 것들은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될 때 더욱 더 날카롭고 치명적인 것으로 변모하곤 한다. 그냥 의무를 어긴 것과 당연한 의무를 어긴 것은 얼핏 봐도 그 중대함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나는 공적활동의 영역에서 효과적인 공격을 기하기 위한 사회일반의 질주가 숱한 의무들에 대하여 <당연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됐다는 것이 나의 추론이다.


앞서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피력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외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짐작도 하기 힘든 우주의 범위에서는 당연함이라는 게 성립하기 힘들겠지만 특정 가치, 이념을 목적으로 하여 조직된 사회의 범주에서는 그것이 내재한 목적에 비추어 어떤 것들은 그러한 목적을 조건으로 하여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나의 논리는 국방, 조세, 준법 등의 의무들을 지키지 말자거나, 그것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무들을 바라보는 사회 일반의 시선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자유(권리)보다 의무가 더 당연시되고 있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위의 논지대로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와 이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정치유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에서 의무가 당연시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우리사회가 목표로 하는 이념과 가치는 자유, 민주, 공화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되어야 하는 게 있다면 자유, 민주, 공화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보다는 의무를 더 당연시하고 있고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의무보다 자유가 더 당연하다는 의견을 접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잖은 거부반응을 보이곤 한다. 많은 이들이 애국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취하고 찌들어 우리 사회가 기초하고 있는 위대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다. 지구에는 자유 민주 공화국이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다. 때문에 지구의 차원에서 본다면 자유, 민주, 공화정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이상 우리 사회의 범주 안에서는 위의 가치들이 당연한 것이 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고, 하다못해 자유보다 의무가 더 당연시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재화와 안전이 무상으로 취득 가능한 것이 아닌 이상 사회에는 필수적인 의무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의무는 필연적인 이유에서 최소한의 한도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이 사회에서 당연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의무에 의해 특별히 예외적으로 제한될 수 있는 자유뿐이다.


 


201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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