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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학벌의 아이

by 통합메일 201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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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의 아이


“헤어 나오려 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모래지옥”

그에게 학벌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비록 그 스스로는 인식을 하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외면하려 해도 말이다.

원래 그는 철저한 학벌주의자였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학벌에 집착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정신이 박힌 이상 당연히 스스로에게도 그러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을 것이다. 그의 수능 장수는 그것으로 설명이 된다. 속물이기는 하였으되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않고 엄격했다는 점에서 그의 근성은 높이 살만하다. 그런 근성이 빛을 봤다면 물론 속물이 되긴 했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속물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패했다. 실패의 충격을 그는 마더 콤플렉스로 달랬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져온 가치관의 반탄작용이라도 실천하는 듯 그가 동경하던 학벌과 그것을 향유하고 있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게 됐다. 그건 그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는 꽤 철저한 가치의 위계를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 단계는 학벌과 사회적 성공을 동시에 획득한 인간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성공은 했지만 학벌은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이고, 세 번째는 학벌만 챙긴 채 사회적 성공에 실패하여 결국 그 학벌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들이고, 가장 낮은 단계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그냥 실패한 인생들이다. 그의 눈에 그런 실패한 인생들은 조금의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물론 사회적 생산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겠지만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안분지족은 그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최고의 등급이 되지는 못했지만, 같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으로 자신은 여전히 도태되지 않고 그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언젠가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 학번만 좋은 패배자들의 위에 군림하겠다는 포부를 통해 자신은 여전히 타협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내외로 끊임없이 표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일이 이쯤 되면 훌륭한 속물이 되기는 거진 틀린 일이 되어버린다. 그는 사회적 성공을 해도 여전히 자신이 좋은 학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해소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다가 죽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학벌에 실패한 이가 그것을 가진 이들을 제치고 보란 듯이 성공해보겠다고 발버둥을 칠수록 학벌의 끈이 그 목을 더욱더 조여 오는 원리가 대저 이러하다.

이 지옥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것에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학벌은 과시의 도구, 사회적 성공의 디딤돌과 같은 것이다. 그런 외재적 가치에의 추구는 집착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결국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세상에의 비겁과 깨달음은 매우 닮았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집착에 빠진 이를 비웃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결국에는 진심으로 모두를 사랑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2013.06.11. 오늘은 많은 생각을 정리하는 날이 될 것 같구나.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9Q0M5U6MMtL9hWNedPRaT8EX.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604pixel, 세로 2284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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