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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쓸모 있는 연애

by 통합메일 201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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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연애


사실 나는 조금의 게으름도 없이 연애를 꿈꾸는 인간이다. 한시도 쉬지 않는 덕분에 뇌의 어디 한 부분이 먹먹할 정도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리고 내가 연애를 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니 기실 거기에 널린 연애라는 것들은 실로 하찮기 그지없는 것들이 많다. 더 나아가서는 쓸모없기도 하다. 이것은 첫 번째로 문화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이며, 동시에 나 자신의 문제이다.

이 세상에 보급된 연애의 문화라는 것들은 실로 하찮다. 연인들은 만나서 매우 소중한 시간과 추억들을 공유하는 듯 보이지만 기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다. 물론 이것은 시간과 재화의 한정이라는 필연의 자연법칙과 맞닿음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소이라 하겠으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연애라는 것이 일방적으로 소비의 문화로 방향 지워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 연애라는 것을 떠올릴 때 그것을 극단적으로 형상화시키면 결국 많은 것들을 함께 소비한다는 개념으로 점철되어 가게 된다. 무엇을 소비하는가? 시간과 재화와 상대방이다. 작금의 세태는 연애의 관념이 생산성이나 작업의 개념 및 가치와 접촉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터부시하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그 이유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과 직업이라는 것이 자아실현의의미가 거세당한 채로 그저 소외의 깃발로서만 그 정체성을 표방하게 됨으로써 연애나 사랑이라는 감정과는 결합되는 것이 애초에 상상 조차 불가능한 개념으로 뒤틀려 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두는 게 가능할 것이다.

다음 문제를 보자면 위의 연장성 위에서 그런 전환적 발상으로서의 연애를 상상 가능한 인간도 참 드물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세상이 주입하는 연애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사춘기에 진입한다. 거기에는 남녀의 연애에 있어서의 성역할도 포함되어 있다. 각종 고정관념과 미신과 선입견이 창의력으로 가득해야 할 인생의 결정적 시기를 미명의 암흑시대로 만들어 버린다. 운 좋게 일찍 그 시절을 벗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죽는 순간까지 여명의 은총을 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암흑세계에 매몰된 이와 함께 참된 연애를 시도하는 일은 피차 서로에게 잔인한 일이 되기 쉽다.

마지막은 바로 내가 문제다. 애초의 문제의식이 내게서 뻗어나간 것인 만큼 나는 나 역시도 원인의 하나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생산과 의무와 황금률에 대한 집착이 역시 주요하겠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내 안에 내재된 잔인함이다. 같은 곳을 지향하지 못하는 이에 대하여, 세상에 대해 같은 파장의 시선을 던지지 못하는 이에 대하여, 알을 깨는 아프락사스가 되지 못하는 이에 대하여 나는 잔인하다. 굉장한 어설픔으로 그것은 더욱더 잔인하다. 마치 망나니의 무딘 칼과도 같은 것이다. 그 칼은 미명을 잠재우지 못한다. 그저 끊임없는 고통과 자기모순을 제공할 따름이다. 방향을 잃은 당신이 그 허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2013.06.12. 결국 스스로 생을 정리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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