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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러니까’의 세계

by 통합메일 201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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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의 세계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지만 이따금 뜬금없이 <그러니까>라는 접속사를 내세워 문장을 시작하는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나 역시 부지불식간에 그들을 닮아 노상 문장의 앞에 <그러니까>를 붙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글에서 주장의 핵심을 꺼내 보일 써도 참 유용한 단어였지만 내가 주목하는 용처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이쿠>라도 짓들이 그냥 한 문장을 툭, 하고 던질 때 그 말의 머리에 <그러니까>를 붙이는 행위였다. 내게 그것은 모종의 금단에 휘두르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같이 느껴졌고, 그래서 무척 아슬아슬하고 고혹적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외국어인 영어에도 <그러니까>와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 있는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당장에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전을 찾아보니 <so,> <for that reason>, <therefore> 등의 단어가 검색된다. 나는 수긍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려나 말았다. 저 단어들 속에서 내가 <그러니까>에서 느낀 인상을 찾으려는 시도는 자못 기만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니까>와 닮은 단어는 <그래서>, <그러므로>를 들 수 있다. 매우 비슷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용도 가능할 수 있겠으나 알게 모르게 엄연한 차이가 스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는 보다 강한 명쾌함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떤 단어보다 절실하게 명쾌함을 지향하는 단어였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설명할 때 상대방이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 심심찮게 <그러니까>의 등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

그것은 답답함과 불통으로부터 태어나는 말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참을 수 없어서 혹은 타개하기 위하여 <그러니까>는 흔히 논리의 비약이라는 악수를 감수한다. 그런 비약 속에 숨어있는 것은 필연성과 당위 같은 것들이다. 즉 그것은 논리적 필연성과 도덕적 필연성을 연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고, 그것으로 흐르는 힘이 있다. 상기한 <그래서>와 <그러므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러니까>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훨씬 더 강하다. 그리고 그래서 무모하다.

물론 그것이 일절의 비약도 없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자체가 가진 매력은 차마 비약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치 치명적이다. 그것은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고 싶게 하는 유혹이다. 우리의 주장과 생각과 꿈과 목적의 전제가 되는 리얼리티로서의 세계를 직시하고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도출하기 위해 인과류의 목적어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러니까>를 적으면서 소리 없는 입술로 그것을 읊조리는 순간 우리는 비약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엄연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하고 지향하는 필연성과 당위를 사용하여 문장을 완성하게 되고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머리에 씌워진 <그러니까>의 능력으로 하찮게나마 세상 위에 꼿꼿이 서게 되는 것이다. 비록 부질없어 보이는 측면이 강하고, 현상과 논리를 왜곡하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렇게라도 세상을 비약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실존인가 하는 것이다.


2013.06.14.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고기를 먹는 날이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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