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공부해라”로 쓰고, “시험 기술 연습해라”로 읽습니다.

by 통합메일 2013. 7. 8.
반응형

“공부해라”로 쓰고, “시험 기술 연습해라”로 읽습니다.


이에 대해 적으며 하니 무수한 자기검열의 숲이 나의 시야를, 나의 글이 나아갈 길을 가로막는다. 심지어는 그것이 가슴 속에 들끓는 그 무엇을 해소시키기 위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선 그 이전에 내가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해소하기 위해 글을 적고 있는 것을 엄마가 목격한 것이 모든 것의 화근이었겠다. 얼른 한 페이지를 꾸역꾸역 채워 넣은 나는 내 나름대로 공부를, 아니 시험 기술 훈련을 하겠다고 그것 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공부 좀 해라(시험 기술 연습 좀 해라)”라고 던졌다. 참 이상하지. 사실은 별것도 아닌데, 왜 그 말은 그토록 날카롭게 날아와서 그토록 정확하게 박히는 것일까. 나는 생각한다. 그 말이 왜 그리 내게 치명적인 것인지. 어떻게 해야 그 말이 조금이라도 덜 아픈 것인지, 그 말로 인해 이미 불거져 나오는 나의 분노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분노의 평화적인 해소를 위해서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펜을 잡았다.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뭔가를 때려 부수는 것 보다는 (사실 다 소중한 것들이라 부술 것도 없다.) 이렇게 해소를 하는 게 가장 현명하고, 김정환 답다고 할 수 있으며, 사려 깊기도 하고, 감정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글과 마음을 함께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뭔가 많은 것을 얻은 듯한 기분이 되어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이 행위는 일종의 반항적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에 엄마의 자제력을 붕괴시킬 수도 있겠지만 일이 그렇게 되면 그건 엄마의 탓이다. 나는 분명 일찍이 나의 모든 행위는 학습을 위한 자기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게다가 내가 이렇게 평화적이고 발전적인 행위로 감정을 조절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어머니가 선을 넘는다면 그것은 응당 어머니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나는 무엇인가 쓰지 않고는, 아니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지 않고는 머리와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우선은 내가 이미 하고 있는 행위를 거듭 명하는 엄마의 주문을 전형적인 잔소리로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단순히 잔소리라면 나의 특성상 그렇게 분노하는 것은 좀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역시 내가 일전에 밝힌 대로 나의 여가생활에 대하여 긍정을 보내주지 않는 엄마에 대해 본능적인 야속함을 느끼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는 생각이고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실로 나는 타인으로부터의 긍정에 엄청난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저 나의 그런 여가에 대하여 아주 간신히, 힘겹게 그것을 묵인하는 게 그나마의 최선인 현실인 것이다. 어떤가. 나는 내가 희망하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긍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답답하다. 공무원이 되기보다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 문학성도 놓치지 않는.

20130706 사람 살리는 글이라는 게 별거냐.

반응형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벼 파는 말, 마치 제세동기처럼  (0) 2013.07.08
기억해라, 술이 선사하는 의기소침함을  (0) 2013.07.08
윤시현  (0) 2013.06.17
간신과 군자  (0) 2013.06.17
‘그러니까’의 세계  (0) 2013.06.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