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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록

아래쪽 사랑니를 뽑았습니다.

by 통합메일 201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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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Google image>


지난 번에 처방약 검색 방법을 포스팅하면서 사랑니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처방 받은 약 무슨 약인지 검색하기(대한민국의약정보센터 의약품 식별 서비스): http://mskjh.tistory.com/438)


사랑니도 사랑니지만 턱이 부으면서 염증이 편도선까지 전이되는 바람에 침 삼킬 때마다 저릿저릿할만큼 바늘로 쿠욱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는데 진짜 힘들더군요.


그리하여 큰 뜻을 품고 치과에 갔습니다.




이 치과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곡2동 GS마트 사거리에 위치한 심치과입니다.




유명한지는 모르겠고, 그냥 저희 동네에서 마을과 함께 늙어가는 그런 치과입니다.

카운터의 코디 선생님의 명랑함이 진짜 어마어마한 그런 치과이지요.

'싹싹함'의 이데아 같은 게 있다면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몰려드는 손님들이 기다림에 지치면 달래고, 치료 끝나온 나온 사람들한테 주의사항 알려주고, 살갑게 살갑게.. 하여간 연세는 저보다 제법 많으실 것 같은데 그 명랑함이라는 게 사람에게서 빛이 나게 만들더군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저 정도의 인재면 이 작은 동네에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하여간 뭐 저는 당시 그 대기실에서 성별로 보나 연령대로 보다 그냥 과묵하게 얌전히 앉아있는 게 적절한 상황이었던지라 그 분과는 딱히 말을 섞어보지 못했고요. 일전에 이곳을 방문해서 위쪽 사랑니를 뺐었는데 그때는 정말 마법처럼, 뽑는다는 느낌도 없이, '어? 뽑았어? 진짜?'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 고생 없이 사랑니를 뽑는 역사를 경험한지라 다시 이곳을 찾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번에도 마법을 기대하면서!


월요일 오전에 방문했더니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되었습니다. 근 한 시간을 기다려서 치과진료용 침대에 앉을 수 있었는데요. 일단 의사 선생님이 위치를 파악하고, 뽑아야 하는지 뽑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한 다음 마취를 합니다. 조금 아픕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엑스레이 사진을 한 방 찍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면서, 그리고 고개를 약간 설레설레 흔들면서 "아..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뿌리가 모아져 있으면 쉬운데, 이 치아는 뿌리가 갈라져있고, 거기다가 한 쪽 뿌리가 약간 갈고리처럼 휘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저기 맨 위에 있는 그림 정도는 아니고요, 약간 비슷합니다.


저는 "아아아아"하면서 절망의 감정을 표현하였고, 바로 체념하고는 입을 떡 벌렸습니다. 아래쪽 사랑니는 위쪽과 달리 만만치 않다는 풍문을 심심찮게 들었던지라 대충 각오는 하고 왔는데, 막상 이런 비보를 전해듣게 되니 절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벌린 입 안으로 곧 바로 집게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힘을 한 번 빡 줘서 당기시더군요. 그러다가 여의치 않으신지 "쓰하.." 이렇게 숨을 고르시더니 연장을 바꿔가면서 당겼다가, 이리저리 흔들기를 반복하십니다. 


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


나중에는 제 턱을 잡고 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


나중에는 저도 요령이 생겨서 그 리듬에 맞춰서, 의사 선생님의 호흡에 맞춰서 반동을 넣어드렸습니다. 힘내세요 선생님. 전 선생님을 믿어요. 느낌상 절반은 뽑은 거 같은데 지금 여기서 다시 밀어 넣을 수도 없잖아요.


"끙차"


흔들흔들흔들흔들


이따금 들어오는 석션이 반갑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사실은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니의 뿌리로 여겨지는 저 깊숙한 곳은 뻐근한 아픔이 여실히 느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입을 떡 벌리고 타인의 손에 제 턱과 이를 맡기고 있는 처지에 그 통증을 묘사할 방법이라곤 제게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진짜 아주 조금이긴 했지만, 도망가고 싶다는 충동이 살짝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지요. 제가 믿는 신도 떠올랐어요. 어린 아이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도망가고 싶겠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께서 힘 좀 빼라고 지적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수시로 의식하면서 몸에 힘을 빼곤 했으나 이내곧 뻗뻗하게 굳어지는 제 몸이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질끈 감은 눈꺼풀 사이로 미지근한 눈물이 스며올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휴, 어쩔 수가 없어요. 이건 뭐 뿌리가 저렇게 되어 있으니 마냥 흔들고 당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고통이 느껴지셨는지 아니면 이 난국에 겸연쩍으셨는지 의사선생님께서는 그런 위로의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저는 뭐 말도 못하고 "ㅇㅇ" 비슷한 소리를 냈습니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잇몸 속에서 그 갈고리 같은 사랑니의 뿌리가 제 살을 찢으면서 내는 "뻐짓뻐짓"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여전히 제발 빨리 뽑아주기만 해달라고, 의사 선생님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는 뽑혔습니다. 총 소요된 시간은 10~15분 정도 걸린 것 같네요.


"휴 고생하셨어요. 뿌리가 휘어 있어서 쉽지 않았네요. 몸에 힘을 너무 줘서 몸살 좀 앓으실 것 같아요. 손 좀 봐요."


그 말을 듣고 제 손을 보니 손을 너무 꽉 마주 쥐고 있어서 손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침은 뱉지 말고 삼키시고요, 거즈는 한 시간 뒤에 빼세요. 오늘 하루는 술 담배 하시면 안 됩니다."


밀어넣어준 거즈를 꽉 물고 의자에서 일어나는데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으며 그 와중에 의사 선생님께 고생하셨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나와서 결제를 하고, 처방전을 받는 과정에서도 고통은 더욱더 심각해지면서 연신 이마를 문지를 뿐 도리가 없습니다. 통증 때문에 머리로 피가 몰리면서 머리가 띵하고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잠시 앉았다 가라고 해주셔서 말씀대로 대기실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이대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아서 얼른 일어나서 병원을 나섰습니다. 1층에 있는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내밀고 약을 샀습니다.


"항생제 하나랑 진통제 하나네요. 1,500원입니다."


약값을 치르고 "그스흐미드"라고 인사를 하니 약사 선생님께서도 사정을 짐작하셨는지 "네 안녕히 가세요." 받아주셨습니다.


이제 집에만 가면 됩니다. 집에 가서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 속에 몸을 집어넣는 것이 일단의 과제가 될 것 같았습니다. 집까지의 거리는 대략 300m 정도입니다. 걷습니다. 열심히 걷습니다. 눈동자가 풀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추운 날씨에 통증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주길 기대했지만 이내 헛된 바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왼쪽 편도선은 극도로 부어올라서 침을 삼키면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습니다. 어디를 부여잡을지 알 수 없어서 귀를 꽉 누르고 침을 삼키니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걸어 집 앞까지 왔습니다. 12층에 있는 집을 올려다보는데 '내가 과연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집에 와서 옷과 짐을 팽개치듯 벗고, 정신 없이 더듬는 손길로 전기장판을 켠 뒤에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통증은 여전했습니다. 침은 계속 나오는데, 뱉을 수 없는데, 삼키면 너무 아팠습니다. TV를 켰는데 뉴스에서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했다는 속보가 연달아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철도발전소위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파업을 철회한다고. 며칠 전 토요일에 철도파업 집회에 참여하려고 시내에 나갔다가 허탕을 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 됐고 그나저나 너무 아픕니다. 빈속이지만 허겁지겁 약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었는데 약이 소용이 없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고통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2010년에 장파열의 부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때의 고통에 견줄만 했습니다. 그나마 고통의 리듬에 장단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은 2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습니다. 약을 먹은지 얼마 안 되었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얼른 한 봉지를 더 뜯어 먹었습니다. 턱의 통증은 덜해졌는데 침 삼킬 때 느껴지는 고통은 여전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사랑니와 편도선의 연관관계를 검색해보니 저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니를 뽑고 편도선의 통증을 경험했더군요. 그래도 자연스러운 증상인 것 같아서 안심을 했습니다. 그마나 통증이 가시니 이제 천천히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끙끙대며 두 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가 깼습니다.


저녁은 어머니의 김치볶음밥을 몇 숟가락 먹었습니다. 오늘 하루 처음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사랑니를 뽑는 분들은 꼭 식사를 먼저 하시길 강력하게 권합니다. 턱이 아파 입을 크게 못 벌리겠더군요. 오른쪽 치아로만 밥을 씹어 넘기는데 한쪽 치아만 사용한다는 게 그 치아에 매우 무리를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한쪽 치아가 상하면 머지 않아 다른 쪽 치아도 마찬가지로 망가지게 되는 것인 모양입니다. 밥을 먹고 좀 쉬다가, 또 배가 고파져서 또 밥을 몇 숟가락 먹고, 사과에 우유를 섞어 갈아먹었습니다. 저녁이 깊어지니 좀 살겠더라고요. 침착해지고, 물론 침 삼키는 것은 여전히 고역이지만 괜찮아진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자면서 흘린 침에 베게에 핏자국이 살짝 찍혀 있었습니다. 살짝 조소가 흘렀습니다. 아직 아픔이 좀 남아있기는 했지만 전날의 통증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귀엽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바쁘게 어머니 일을 돕고 점심은 쭈꾸미 볶음을 먹고, 또 바쁘게 일하고 하다보니 통증도 잊고, 그 새 붓기도 많이 빠져서 편도선도 조금은 호전이 됐더군요. 물론 지금도 침 삼킬 때는 좀 아프긴 합니다만, 전날처럼 침 삼킬 때마다 큰 각오를 할 정도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휴, 정말이지 윗 사랑니가 그냥 커피라면, 아랫 사랑니는 그야말로 TOP였습니다.


그동안 윗사랑니만 쉽게 뽑으면서 사랑니를 우습게 봤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통증'에 대한 새롭고 순수한 고찰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하지만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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