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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34

[자작시]우물 우물 “첨벙”또 누가 떨어진 모양이다친구들은 안간힘을 쓰며 벽을 기어올랐다축축한 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와글와글 울었다너도 빨리 올라 오렴호기심, 경멸, 동정, 혐오가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어차피 입구는 막혔어. 올라가 봤자야그래도 그 물 속에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대답 대신 나는 검은 심연으로 잠수했다말라비틀어진 청춘과, 시체가 된 꿈들이 부유했다나는 수몰되어 끊어진 계단 밑에 숨었다체온은 차디찬 수온을 닮아 가는데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꺾이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입을 벌리면 부끄러운 비밀들이 기포가 되어 솟구쳤다모두 삼켜야만 한다검은 물에 잡아먹히기 싫으면검은 물을 잡아먹는 수밖에나는 끊임없이 들이마셨다내일을 지켜주지 못한 베란다 난간과모기향처럼 피워놓았던 연탄엉뚱한 곳에 박혀버린 식칼너무 많이 삼켜버린.. 2013. 12. 4.
[자작시]사산 사산김정환자 여기 단어 두 개그리움이 그립다기억해본다세수를 하다가 사진첩 생각이 났다언젠간 고향의 옹달샘을 찾듯 잠시 돌아올지도 모를 이들이 떠올랐다보이지 않는 그들의 눈동자에서말간 손이 뻗어 나오리라박제된 시간을 더듬으리라나는 용기 내어 그리움을 잉태한 인간이다세면대 위로 뚝뚝 떨어지는 추억을 노려보는 인간이다당신도 한 방울의 그리움을 품었는가환멸의 정상에 올랐을 때 문득 혼자일까 두려워불현듯 창을 열고 허공을 젓고 싶다내 그리움이 아니라고,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하지만 알잖아사귀지 않아도서로의 망각을 나눠먹은 이들은언젠간 같은 얼굴로똑같은 그리움을 사산하는 법이라는 걸이 글엔 그리움도 상징도 아무것도 없다는 걸 2013. 12. 3.
[시쓰기]감옥 김정환 겨울의 햇살에언 창살이 녹아내린다. 닭이 투명한 울림을 토하기도 전에죄수들은 머리를 감고오늘도 어김없이 석방됐다.아니 석방 당했다. 모두가 떠난, 여전히 몽롱한 감옥에는살비듬 묻은 마음만이 남아서쉼 없이 날이 서 가는 햇살을찡그린 채 바라본다. 2013. 11. 28.
[시쓰기]선물 김정환 결국 마음은 세 시로 갔다. 아쉽지만 몸은 두 시에 두고 올 수 밖에. 약속은 일곱 시다. 아니 약속도 아니다. 감동을 위해 자세한 약속은 생략된다. 겨우 몸이 세 시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열한 시를 넘어갔다. 껍질이 벗겨지듯 잔인하게 분리됐다. 아마도 당신은 내 몸과 마음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겠지. 약속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 몸은 마음을 부른다. 빈몸뚱이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나 마음은 이미 내일로 달아나 제멋대로 한 달 뒤, 몇 년 뒤를 읽어나가는 중이다. 애타게 불러도 좀처럼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곳에 눌러앉겠다는 전보를 보내오기도 했다 낡은 카페의 평일도 들어가 팔짱을 끼고 창가에 앉았다. 잠이 들 즈음 마침내 당신이 나타났다. 오는 길에 샀다며 노을빛 물든 내 몸..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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