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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34

[시쓰기]걸어 다니는 나무 김정환 유령처럼 캠퍼스를 부유하던 나는 문득 아마존의 밀림에 서식한다는 걸어 다니는 나무를 떠올렸다 무슨 이유에선지 일 년에 몇 미터씩 이동한다는 나무였다 그것은 다리가 아파서였는지도, 아니면 한 낮의 나른함이 지나치게 무거워서였는지도 모른다 불규칙하게 변해가는 인생의 동사들을 외워가면서, 내 마음 속에 한 번도 존재해 본 적 없는 규칙성을 투박한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 아무도 모르게 그 나무를 찾아보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어쩌면 그 나무가 내 근처까지 오지는 않았을까 뿌리를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를 부지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그 나무는 지각생의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모두가 사라져버린 등굣길에서, 노인들이 자신의 인생을 분갈이 하는 아파트 화단에서 그 나무를 만나게 되.. 2013. 11. 27.
[시쓰기]여기는 잔잔하다 2 김정환 유리와 칼이 날카로운 이유는 차가운 소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뜨거움에 시달리던 이들은 고향에 돌아온 부상병처럼 입 다문 소리를 냈다가느다란 불빛 새어나오던 부엌에서 아버지가 내려놓는 소주잔 소리신경질을 내고는 복숭아를 깎으려고 동생이 집어든 과도 소리마음이 아픈 것은 오직 그 때문이다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에서 마음은 늘 바다를 꿈꿨다모든 것을 집어삼키고야 말겠다.물속에 누워 눈부신 멍울들의 출렁임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잠이 왔다이따금 낯익은 소주잔이나 과도가 나를 지나 심해의 바닥으로 침전해 갔다마음은 어떤 소리로 만들어졌을까그 온도를 느끼기엔 나는 너무 먼 곳으로 와버렸다모든 것이 가라앉는 세상그 수면의 계단 밑에서 나는 부유한다잔잔하고잔잔하게 2013. 11. 27.
[시쓰기]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김정환 최초의 기억은 네 살태어났을 때의 기억은 전혀 없다출생 전날 나는 대체 몇 병이나 마셨던 걸까어머니 뱃속 어디에 그 많은 술이 있었나유년시절에서 그 이야기만 쏙 빼주신 부모님의 배려란. 사랑하는 당신이 서운함이라고 써내놓은 것들왜 이렇게 생소하게 보이는 걸까이제야 좀 눈에 익어가는구만고장 난 카메라 같은 내 얼굴 앞에서당신은 그만 한숨을 푹 내쉰다. 오랜 추억을 돌아 나오는 길끝까지 붙잡지 못하고결국 마지막에 기억을 놓쳐버린 이는아마도 남들보다 유난히 많은 기억을 짊어져야 했던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누군가를 배웅해야 하는 날우리는 기억할 수 없는 시간도 함께 떠나보내지만그들을 닮은 또 다른 누군가를 기억하면서마침내 조금씩 갚아나가게 된다.우리는 모두 기억을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2013. 11. 27.
[시쓰기]언젠가 누군가가 나의 잇몸에서 돋아나지 않았을까 하는 날 김정환 빠질 것을 예감하고 불안불안 흔들리는 이처럼 나는 힘겹게 당신을 지켜나갔다 그대가 걷힌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면 눅눅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양치감에 익숙해져 가노라면 처음 어머니가 내 이에 굵은 명주실을 감았을 때처럼 떨리는 턱을 다문 채로 울먹이며 잠으로 가라앉았고 이가 빠지는 꿈을 꾸지 않을까 초조해 하는 꿈을 꾸었다 이가 빠지는 꿈은 소중한 사람을 잃는 꿈이라는데 언젠가 내게 그런 얘길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친구는 어느 날 몇 번이고 이가 다시 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떼돈을 벌거라고, 어쩌면 이미 기술을 있는데 치과업계에서 돈을 벌려고 공개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는 비밀을 털어놨다 이름 없는 미스 코리아의 앞니를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나는 지나치게 크게 맞장구쳤다 입 속의..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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