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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가족은 한 집에 있다.

by 통합메일 2013.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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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한 집에 있다.>

최근 이 집의 굵은 흐름이라고 할 만한 것은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한 집에 모여 살게 되었다는 게 아닐까 한다. 그리하여 나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기슭에서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진한 그리움을 담아 오줌줄기를 발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동생은 금요일에 집에 와서 일요일이 되면 좀비의 얼굴을 하고 기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아버지께서는 외할머니께 “어휴.... 장모님, 애들도 다 나가있고 하니 썰렁한 게 이건 뭐 사는 것 같지도 않아요.”라고 의외의 하소연을 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 역시도 보은과 제천으로 북에 번쩍, 남에 번쩍하는 노고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이 그 화두의 자잘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에 보면 심심찮게 “왕은 산성에 있다.”는 문장이 나오듯이.) 우리 가족은 한 집에 있다. 대내적으로는 당연히 일장일단의 진리를 재확인하게 되는 경우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대외적으로 볼 때는 일단 흩어졌던 가족이 한 데 모이게 되매, 그것은 엄연히 여러모로 ‘좋은 일’임에 분명한 것 같아 그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 사료된다.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는 것은 어떤 것들은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고, 어떤 것들은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것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돌아온 집에서 나는 또 다시 둥지를 틀 듯 내 주변의 사물들을 나의 생활방식에 최적화되도록 조정해 나갔고, 동생은 또 다시 거실에 누워 잠을 잤다. 또 한편으로 나는 마음속에 품어 온 속리산을 이따금 꺼내 보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엮어나가려 하는 것이고, 동생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의 방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과거처럼 한 집에 모여 사는 가족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과거를 품고 있는 미래로 흘러가는 나뭇잎의 일을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또한 집의 풍경은 ‘집사람’과 ‘바깥사람’으로 간단히 묘사할 수도 있다. 직업이 있는 아빠와 동생은 바깥사람이다. 직업(정확히는 직장)이 없는 나와 엄마는 집사람이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동생은 아침 6시30분에 기상하여 7시30분에서 7시40분에 집을 나서고, 823번 버스를 탄 후에 5정거장을 거쳐 출근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몇 시에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상 후 맥심모카골드 믹스커피(그 노란색) 한 잔과 3개비의 담배를 피우고 입가심으로 수돗물을 한 컵(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마신 후에 8시쯤에 출근하신다. 오창에 위치한 아버지 직장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러시아워를 감안할 때 약 40~50분이 소요될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6시30분에 일어나 딸을 깨우고, 딸의 수발을 들기도 하고 누워서 TV를 보기도 하시다가 딸이 출근하고 난 이후에 뒷산으로 운동을 가시거나, 아버지 차편으로 수영장에 가시거나, 교회에 가시거나 한다. 

집의 주인공인 나는 8시00분에서 8시30분 사이에 기상한다. 알람벨소리는 레미제라블 OST 중에서 랜덤으로 재생되도록 해놓았는데 좋아하는 곡이 걸리면 음악을 듣느라고 부러 알람이 울리도록 누운 채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기도 한다. 이후 이와 얼굴을 청소한 후 아버지가 맥심모카골드커피를 타기 위해 끓여놓은 물로 아라비카 블랙커피를 끓여 책상에 가져다 놓고 9시 전후로 학습을 시작한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병행(이라고 쓰고 “힘에 부쳐 그것만 본다.”라고 읽는다.)하기 때문에 주로 행정법과 영어를 보고 있다. 노는 둥 보는 둥 하다가 어머니가 오시면 밥을 먹고 컴퓨터 하며 좀 놀다가 또 보다가 쉬다가 하다 보면 아침에 탄 커피는 약 2~3시쯤에 동이 난다. 커피를 키 큰 머그컵에 타서 굉장히 홀짝홀짝 마시기 때문에 꽤 오래간다. 새로운 커피를 끓이고 어머니와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잠깐씩 떤다. 다양한 내용이 화제가 되는데, 박근혜 대통령, 안철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박정희, 육영수, 에어컨, 외할머니, 엄마의 다이어트, 휴대폰, 현대카드 포인트, 엄마의 허벅지살, 백수인 아들에 대한 한탄, 그나마 취직한 딸에 대한 안도, 정현이 방에 대한 대책, 컴퓨터에 대한 기술적 조언 같은 것들이다.

5시가 되면 동생이 집에 오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엄청난 하소연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소싯적에 흥미 있게 읽은 요한계시록에 보면 온갖 못된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무저갱’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생각나도록 만드는 게 바로 하루에서의 그 시간이다.

나는 ‘팔자’와 ‘덕론’으로 동생을 조련해 온지가 꽤 되었는데 이것은 참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이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는 묘한 힘이 있는 것이라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유용하다. 물론 그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은 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진리나 진리 비슷한 것을 맛보고 그것을 자신의 자아에 대입하여 소화한 다음 그것을 싸고 다시 그것을 삼킨 후에 몇 번 반추한 다음 그럴듯하게 트림을 해내는 경험을 가지지 못한 인간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2년 전에 내가 임용시험 재수에서 똑 떨어지고, 동생이 초수에 한 방에 붙었을 때 나는 하루하루 애써 평정심을 얼굴에 덧씌우며 살았는데, 동생과의 사이는 뭐 아웅다웅하는 것으로 별반의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참 의좋은 남매라고 볼 여지가 있긴 한 데 아무튼 그때부터 나는 동생에게 ‘덕론’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너의 덕으로 볼 때, 너의 첫 발령지는 제천 아니면 단양이다.” 이게 시작이었다. 몇 번 그 말을 했는데 정말로 동생이 제천으로 떨어진 것이다. 

희비가 엇갈리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 다음으로 ‘인생곡선론’, 이른바 ‘새옹지마론’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한 번 데이면 또 좋은 날이 있기 마련이니 덕을 열심히 쌓으라.”(라고 쓰고 “나에게 잘 해라.”라고 읽는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치는 동생이었지만 예의 ‘제천발령론’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전력이 있는 터라 지속적으로 그 이론을 들먹이니 신기하게도 자신의 부덕을 살피는 버릇을 아주 조금씩이나마 갖추게 되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남매부덕유덕논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기본적인 전제는 덕이 있어야 복이 온다는 ‘덕복합일설’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 이론이 자폐적인 것이, 상대방의 부덕을 지적하는 것도 하나의 부덕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결국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아무튼 거짓말 안 하고 우리 남매가 처음 1년 동안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너는 부덕하다.”는 것이었고, 드물게 나눈 대화는 “너에게 덕 있으라.”였다. 아무튼 그렇게 오고 가는 부덕지적질 속에 1년이 지나가게 되자 알게 모르게 남매지정이 트여 나중엔 서로 뭔가를 베풀면서 “너에게 덕 있으라.”를 행하는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부덕지적질보다 차라리 그게 더 재밌기도 했나 보다. 귀찮으면 누구 말도 안 듣는 동생이 나의 회유에는 그래도 좀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생기고, 용돈도 심심찮게 주고,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생에게 생일 선물을 주고 뭐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슬슬 “근자에 네 행실이 유덕하니 인생 곡선의 기울기가 매우 급격하여 머지않아 세계 제일 유덕지이자 천혜의 고장인 청주로 돌아오게 될 날이 오겠구나.”라고 축복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리고 2년 차에 낸 전보내신에서 동생은 청주로 오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게 나의 덕이 동생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동생은 코웃음을 치는 희극들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디 교만하고 간사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천혜지장으로 돌아오게 되자 세상을 다 얻은 형국이 된 동생은 나를 ‘업신여기기’ 시작했다. 동생의 간사함은 나에 대한 호칭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따금 동생은 나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상황을 상정해 보자. 거실에 누워 이불을 덮고 좀비의 얼굴을 한 동생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오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최근 동생이 나를 “오빠”라는 호칭으로 부를 때는 물을 떠다 달라거나, 리모컨을 찾아달라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받아 달라거나 할 때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생년이 나를 “오빠”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는 나에게 아쉬운 것이 있을 때뿐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다시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요즘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오후 5시를 떠올려 보자. 동생은 퇴근을 한다. 대개 나는 방에서 책장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있다. 신발장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나왔어!”라는 대사로 자신이 얼마나 짜증이 났고 힘들었는지 그 정도를 ‘집사람’들에게 통보한다. 그리고는 내 방에 들어와 내 등을 툭툭 치면서 말한다. 호칭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뚱키’고 또 하나는 ‘할배’다. 전자는 나의 몸매에서 유래했고, 후자는 겨우내 내가 입고 다닌 카키색 조끼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즉 동생은 다음과 같이 마한다. “어이 뚱키! 사람이 왔는데 인사도 안 햐!”, “어이 할배! 잘 있었어? 심심했지!?” 보다시피 아쉬운 게 없는 상태다. 아쉬울 때와 아쉬운 게 없을 때의 차이가 대저 이러하다. 물론 그런 굴욕의 상황에서 나는 동생이 다음으로 발령 날 곳이 어디일지를 가만히 짐작해 보는 것이다.

그때부터 동생이랑 좀 투닥거리다가 다시 책을 좀 보고 있으면 7시에 아버지가 오시거나, 야근을 하고 오신다는 아버지의 전화가 온다. 아버지는 여전히 요즘도 퇴근 후 소주 한 컵을 준수하고 계신다. 여하튼 그 때 나는 저녁을 먹는다. ‘바깥사람’들과 ‘집사람’들이 한 식탁에 모여 노오란 등불 밑에 앉아 비방하고, 견제하고, 중상모략하고, 탄핵을 시도하거나 회유하고, 변호하고, 변명하며, 비판하고, 비난하고, 수사하고, 무시하고, 잘난 척하고, 상대방에게 굴욕을 주며 식사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식사가 끝나고 또다시 집안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때로는 또다시 투닥거린다. 나와 동생이 투닥거리면 엄마가 중재하고, 엄마와 동생이 싸우면 내가 기름을 뿌린다. 동생이 나를 타박하면 엄마가 보듬고, 내가 동생을 학대하면 또 엄마가 보듬는다. 그 사이에 아빠가 끼어들어 눈치 없는 대사를 날리면 부러 나는 크게 웃어젖히고, 그 대사에 엄마가 눈총을 쏘면 역시 부러 나는 크게 웃어젖힌다. 그렇게 ‘바깥사람’과 ‘집사람’이 함께하는 밤이 채워져 간다.

겨우 나흘 동안 굳어진 삶의 동그라미가 벌써 이렇다.

신기하기도 하지.

신기하게도 우리 가족은 한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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