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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기23

[시쓰기]별명을 짓는 저녁 김정환 고양이를 만나는 것은 역시저녁이다 별명을 지어달라고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뭐가 좋을까, 라고내가 운을 떼니 그건 정답이 아니에요, 라고첫 실연을 당한 이처럼 돌아서 버렸다 아니 아니 왜 토라지는 거니, 라고달래보려 했지만 고양이는 그만깊숙한 골목길이 되어버렸다 저만치에서 가로등과이만치에서 내가 마주하고 빛나는 것은 별명 없는골목과 추억 뿐 오늘도 나는 저녁을 품고별명을 짓는다 2013. 11. 28.
[시쓰기]밤의 버스 김정환 밤의 지방도로를 버스는 달린다잔뜩 힘 준 라이트엔 엉겨 붙는 눈발이김 서린 차창에는 누군가의 손바닥이흔들리던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있지그리고 그 뒤로는휑한 돌아봄이 긴 꼬리처럼 달라붙었다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진 않았지잊지는 않을게야내일도 도시는 반짝반짝 숨을 쉴 테고엎드린 눈 위로 아스라한 빛을 향해밤의 버스는 달려갈 테니까 2013. 11. 28.
[시쓰기]뽀득뽀득 월요일 김정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겸손하고,아프지 않은 날에도금욕해야 할텐데 지각한 벚꽃처럼반가운 것이세상에 또 있을까 죄송하지만담배를 피우는 심정으로시를 읽고 베낀다.내 안에 거하다무엇도 남기지 말고 떠나시라고 엄마가 사준 총명탕은 졸음만 옹알대서몽롱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나는오늘도 취하셨을 당신을뽀득뽀득 문지른다. 내일은 꼭 산책을 해야지이내 곧 뿌예지지만. 2013. 11. 28.
[시쓰기]무대 위의 저녁 SE 김정환 태양을 거세당한 극장나는 무대 위에 뿌리 내린 한 그루 저녁이 되었다.서로의 사타구니를 쓰다듬는 관객들 앞에서부릅뜬 조명에 의해 곱게 박제되어 있는 것.방백도 독백도 모든 대사가 다 끝났는데일렁이는 이곳을 내려갈 수가 없다.누군가는 나를 봐주리라는 생각인가.저기 극장을 나서는 연인의 권태 정도는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해 줄 것인가.가지를 구부려 밑동의 여명을 잘라내고 싶지만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오직 무위(無爲) 뿐이니저 태양 같은 걸 직시하여 내 눈을 태우리찢어진 시간의 틈으로 눈부신 저녁이 흘러들어왔고벙어리 별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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