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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07 자전거 전국반주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9 (18日 가산-상주-보은-청주)완결(Bicycle Travel)

by 통합메일 201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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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과거에 썼던 여행기의 사진들의 링크가 다 깨져서 복원합니다.


<이전 목차>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준비)(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2 (1日 청주-진천-천안)(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3 (2日 천안-당진)(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4 (3日 당진-보령)(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5 (4日 보령-서천-군산)(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6 (5日 군산-전주-정읍)(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7 (6日 정읍-담양-곡성,석곡)(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8 (7日 석곡-순천)(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9 (8日 순천-보성)(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0 (9日 보성-해남)(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1 (10日 해남-완도-제주)(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2 (11日 제주-중문)(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3 (12日 중문-성산)(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4 (13日 성산-제주)(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5 (14日 제주-부산-울산)(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6 (15日 울산-경주-영천)(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7 (16日 영천)(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8 (17日 영천-대구-가산)(Bicycle Travel)

[자전거여행]2007년 할짓없어서 다녀온 전국반주(全國半走) #.19 (18日 가산-상주-보은-청주)완결(Bicycle Travel)




2007년 6월 28일


동네 초등학생들의 호기심어린 장난과..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뭇잎들이 비를 부르는 듯한 바람에 쓸리는 소리에

별로 자지도 못한 것 같은 데 눈을 떠보니 여섯시..

어느덧 세상은 환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데 눈꺼풀이 꿉꿉한게 느껴지는 것이..

스스로가 생각할 때도 참 피로가 많이 쌓였구나 싶네요;;

텐트에서 기어나와 벤치에 앉아 잠도 깰겸 뜸을 들이는 동안..

머릿속에는 역시나 "오늘은 집에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입니다.

남들이 다 말리는 거 뿌리치고 출발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이렇듯 어린아이처럼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군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07:04

학교 뒤편에 있는 수돗가에서 대충 세수만 하고는 얼른 길을 나섭니다.

나이 흐릿흐릿한게 시원하기는 한데.. 억수비 같은 거 오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널찍한 지방도에 올라서 이정표를 만났는 데

맙소사.. 보은까지 106Km..

그럼 청주까지는 160Km...



아아아~

지금까지 최고기록은 120여Km일뿐이라서.. 자신이 없습니다.

하긴 뭐 보은이 고향이라 친가 외가가 다 보은에 있기 때문에

보은까지만 가면 어찌어찌 잠자리는 걱정안해도 될 것이고..

단지 귀환이 하루 늦춰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봅니다.



07:33

"윽"

장딴지위로 차가운.. 너무나 차가워서 뜨겁게마저 느껴지는 감촉이 있습니다.

아까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고 뭔가 불안했는 데..

아니나 다를까 하나 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뭐 주변에 비 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 맞으면서 달리는 거야 이제 이골이 났고 해서..

그냥 달립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 것은 이렇게 길이 쫙쫙 펼쳐져 있다는 것이군요.

하지만 불행중 다행중 불행인 것은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이런 넓직하게 쭉 뻗은 도로를 달리다보면 왠지 졸음이 오는 것 같다는 것 되겠습니다.



08:16

휴..

열심히 달렸더니..

그래도 한시간 만에 남은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늘안에 청주 갈 수 있겠다는 확신 비슷한 것이 생깁니다.



아까 아침의 상태확인을 너무 성의없게 한 것 같아서

고글 벗고 헬맷 벗고 한번 제대로 합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상태체크가 될 것 같아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하여 버프는 그냥 착용하였습니다.



달리다가 슬슬 배가 꺼지는 것이 느껴지는 데 마침 길가에 휴게소 겸 매겸 비슷한 것이

있어서 들어가서 포카리스웨트.. 우유..빵.. 컵라면..물.. 엄청난 섭취를 감행합니다.

미친듯이 먹고 있는 데 여행하시는 듯 한 아저씨들이 참 신기하게 바라보셔서

조금 부끄럽습니다;; 여행 경과를 물어보시길래..

청주에서 서해안 따라서 제주도 찍고 다시 경상도로 해서 집에 가는 길이라고

이제 거의 다 와서 참 좋다고 말씀드립니다.



09:00

9시 정각.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이라는 곳을 지나갑니다.

'낙동'?

지명이 참 인상적인지라.. 혹시나 하고 봤더니



아.. 역시나군요..

낙동강이 있습니다.

사실 낙동강은 좀 더 아랫쪽에 있다고 생각했었는 데..

그렇게 남쪽에 있는 것도 아니네요.

다리를 지나면서 성의없게 오리알을 찾아보지만..

보일턱이 없습니다. 성의있게 찾았으면 보였을 것 같은 데요..



이후 편도2차선 지방도에서 내려와 상주로 들어가서

상주 시내를 돌파하여 바로 보은으로 향합니다.






10:52

상주를 그렇게 많이 와본것은 아니지만

어릴적에 몇번인가 와봤던 기억으로는..

별로 멀지 않다고 생각했었는 데..

좀 먼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청주 이정표를 만나네요.

글자만 봐도 반갑습니다 우리집.




땀도 너무 많이 나고.. 이정표를 본 기념으로 잠깐 쉬어가기로 합니다.

'피똥'도 참 많이 지친 것 같군요..

청주에 가면 시원하게 샤워한번 시켜줘야 겠습니다.



이정표 만난 기념으로 기념셀카도 잊지 않습니다.




"악~"

청주 이정표를 만났던 것 까진 좋은 데 그런데..

막상 청주까지의 거리를 보니까 그렇게 좋아할만한 것이 아니군요..

85Km라...

평소에는 하루에 달릴 거리였는 데 말입니다.





11:41

으..

가뜩이나 아직 한참 남아있는 거리에 좌절하고 있는 데..

갑자기 돌발적으로 꽤 가파른 업힐이 등장합니다.

오오.. 벌써 오전에 80Km를 달려버린지라..

제주도 1,100고지도 정복한 김정환이 여기서 땅을 디뎌버립니다.

'이런 굴욕이..있나'라고 생각하지만 침착하게 사진을 찍습니다.


왜냐하면 오르막이 있으면 정상이 있고 내리막이 있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은

언제나 항상 이쪽편이니까 말이죠.





'오르막차로 끝'

'고생 많았습니다.'라는 글자로 보입니다.






내리막을 50km/h로 시원하게 내려가서 다시 평지를 달리는 데 하늘 위로 높게

길이 만들어지고 있네요..

아마도 저게 상주-보은간 고속도로인걸까요?

저 길이 뚫리면 내 고향 보은도 제발 좀 발전이 되길 바래봅니다.






"아고고고 못 해먹겠네~"

정말 이런 푸념이 저절로 나옵니다.

주위는 첩첩산으로 꽉 막혀 있고..

앞으로 나아가서 집으로 가려면 업힐을 올라야 하는 데 너무 힘이 듭니다.

네.. 그러네요..




12:09

아.. 그런데 그런 바람이 나쁜 바람이었는 지..

또 업힐입니다.

이번에는 더 가파른 것 같네요...

결국에는 1,100고지 정복한 김정환 또 땅에 발 딛습니다.




"아고고고 못 해먹겠네~"

정말 이런 푸념이 저절로 나옵니다.

주위는 첩첩산으로 꽉 막혀 있고..

앞으로 나아가서 집으로 가려면 업힐을 올라야 하는 데 너무 힘이 듭니다.

네.. 그러네요..




가방은 군장마냥 어깨를 파고들고 힙쌕은 허리를 갉아먹는 것 같은 와중에

그저 다리의 피로가 빨리 풀리기를 기다리며 쉴 뿐이지요..

문득 다리를 보니 언제 고장났는 지 기억도 나지 않는 지퍼가 보입니다.

아마도 부산에서 울산 오던 길에 고장나지 않았나 싶군요..

지퍼를 내려도 금방 풀려서 다시 열려버립니다.

쫄바지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페달질하면 더 펄럭입니다..




12:26

제발 이번이 마지막 업힐이길 바라면서..

낑낑대면서 오른 정상..

휴.. 맑고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휙 가볍게 얼굴을 쓸고 저지틈으로 들어와

몸통에 흐르는 땀에 닿으니.. 마치 계곡물에 다이빙 했을 때의 느낌 같습니다.

아.. 현기증이 날 정도이지만 행복합니다.




현기증이 나면 위험하기 때문에 쉬었다 가기로 합니다.

아.. 정말 얼굴 땀으로 범벅이군요..

정상 한켠에 한 무리의 할머님들께서 담소를 나누고 계신데

과연 여기에 어떻게 올라오셨는 지.. 할머니들께서 자전거 타고 올라오시는 상상을 해봅니다;






12:52

크~

드디어 굿바이 상주!!

굿바이 경상북도입니다.

그나저나 상주가 자전거 도시였네요?

이런.. 몰랐습니다;





12:56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제 드디어 충청북도라는 거겠지요 하하;;

아.. 충북 충북

정말 오랜만입니다.

처음 충북을 나와 충남으로 넘어갈 때는 그저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뿐이었는 데..

돌아오니 이렇게 좋습니다.

"외도(外道) 나갔다오면 다 애도(愛道)자가 되는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13:01

이제는 충청북도 보은군의 국도를 달립니다.

그런데 달리다가 보니 언덕 저 너머로 영화 'Contact'에서 봤던 것 같은 그런

대형 위성안테나 같은 게 세워져 있습니다.

"와우".. 진짜 크네요..

혹시.. KT의 시설을 가장한 국가비밀기관이 아닌가 하고 또 생각해봅니다.




13:21

청주는 52Km가 남았고 보은은 11Km가 남았다고 합니다.

아직 두시가 안됐고.. 보은가면 2시.. 밥 먹고.. 3시.. 청주까지 두시간..

자동적으로 착착 계산을 해보니 아무리 늦게가도 저녁 여섯시면 집에 갈 수 있겠다는

답이 나옵니다. 아.. 좋네요.





길가에 모르는 나무 까지도 참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입니다.

그나저나 무슨 나무일까요.




13:41

명색이 고향이 보인라고 자부했는 데..

달려도 달려도 통 눈에 익은 풍경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내심 불안해하던 차에 드디어 '보은읍'이정표가 나오고

'아.. 여기가 여기야?'하는 생각과 함께 눈에 익은 풍경들이 눈앞을 메우기 시작합니다.



진짜 읍내에 들어서고 이제는 뭐..

어린시절에 누비고 다녔던 곳들이라서 벌써부터 집 같습니다.

어린시절에 참.. 보조바퀴 달린 파란색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많이 쏘다녔는 데 말이죠..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났더니 가족들이 다 없어져서 할머니네 갔나 하고선

3~4Km 되는 거리를 차가 쌩쌩달리는 차도의 갓길을 따라서

엄마 아빠 찾으러 갔던 기억도 있군요;;

지금 생각하면 참 후덜덜한 추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4:04

점심을 먹고 가자 싶어서 읍내 중심가 쪽으로 달리는 데

이렇게 여행식으로 보은에 온 김에 초등학교를 보고 갈까 싶어서

초등학교 1,2학년 시절을 보낸 '동광초등학교'에 들립니다.

학교앞의 다 쓰러져가던 구멍가게는 새로 건물을 올렸군요..

장사하시던 할머니께서는 아직 계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휴대용 연필깎이 마음에 드는 색깔로 고른다고 비닐포장을 뜯다가

걸려서 꿀밤 제대로 맞았는 데 말이죠..



보은읍에는 초등학교가 두곳이 있는 데..

하나가 동광초고 하나가 삼산초입니다.

이런 이름 때문에 에피소드가 생기곤 했었는 데..

동광초 학생들은 삼산초라는 명칭을 거꾸로 뒤집어서 '산삼'이라고 놀려댔었고..

삼산초 학생들은 마찬가지로 뒤집어서 광동, 광동 까스활명수.. 우황청심환이라고 놀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어지간히 유치하네요.



운동장을 가로지르면서 학교 전경을 바라봅니다.

저를 제외하면 변한 것은 별로 없군요.

어린 시절에는 학교가 그렇게 커보였는 데..

지금보니 참 아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운동장 한켠에는 강당을 짓는 지 공사가 한창이네요..

그래도 아직 학생수가 꽤 된다는 표지로 볼 수 있을까요?



운동장에서 교문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16년전 어느날 동광초 운동회 총연습전날 수업을 마치고..

이 곳을 걸어가던 한 아이는 엄마한테 자기 내일 총쏜다고 자랑할 생각에 들떠있습니다.

물론 다음날 그 아이가 지겹도록 한 것은 사격연습이 아닌.. 앞으로 나란히였지만 말이죠.







본관과 후관 사이로 가봅니다.

옛날엔 차들이 별로 없었는 데 지금은 빽빽하게 차들이 주차되어 있네요.




본관과 후관을 이어주는 통로..

골마루에서 신나게 장난을 치다가.. 이 통로를 보며 망보던 아이가

선생님 오신다고 소리를 지르면 모두다 우르르르 도망쳐 들어갑니다.



저 1층 왼쪽에서 첫번째 교실이 2학년 1반이었던 것 같은 데 말이죠.

하루는 미술 과목 시험을 보는 데..

옆에 앉은 친구가 교과서를 꺼내 보다가 걸려서 선생님한테 따위를 맞길래

교과서에 대체 뭐가 있길래 그러나 하고 저도 따라서 봤다가..

뭐 다음 상황은 알아서 상상을;;

그렇게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뒷문입니다.

당시 저희 집은 정문쪽이라고 후문이랑은 별로 친하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구윤회'라고 1학년때의 단짝 친구가 있었는 데

그 친구네 집에 갈 때는 종종 이 문을 통했던 것 같네요.




이제 다시 정문을 나와서 옛날 우리 집으로 한번 가보기로 합니다.

그땐 이 거리도 참 멀게만 느껴졌는 데 지금 자전거로 간다면..

1분도 않걸리겠네요..



집들을 하나 하나 지날때마다 옛날 골목에서 놀던 생각이 납니다.

이 집은 무서운 사람이 산다고 함부로 장난을 못쳤던 집 같군요.




이 골목이 저의 주 무대였는 데 말이죠..



골목에서 가장 친했던 '이한영'이라는 한살 많은 형네 집이었는 데

'삼산목재'라는 목재가게였습니다.

우리집 마당에서 야구하다가 유리창을 깨고는 혼날까봐..

내복차림으로 이집 목재창고 숨어있던 기억이 납니다.



이집은 잘산다고 들었던 개인택시 기사 아저씨네였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우리집이지요.

옛날에는 담장밑에 고추 같은 것들을 나란히 심고..

대문은 초록색에 대문위에 아치에는 꽃나무 덩굴이 휘감겨 있었는 데..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 없이 혼자 들어가보기는 뭐하고 해서 대문 밖에서 마당을 봅니다.

화단에 있는 감나무를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였던지라..

가끔은 밥도 감나무 위에서 먹고.. 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잔다고 설레발도 치고 그랬습니다;;



14:23

다시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오니 배가 상당히 고프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서둘러

시장쪽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김밥나라로 향합니다.



제주도에서 만난 발업잔차형의 아침 메뉴는 언제나 항상

김밥나라 '제육볶음밥'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메뉴에 대한 평은 "그냥 먹을만 하다"였고 말이죠..

전 맨날 김밥에 라볶이만 먹었던지라.. 저도 한번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음..

"과연 먹을만 합니다"



15;00

뭐 한달에 한번은 오는 보은인지라.. 별로 볼 것도 없고 시간도 없고..

어머니께서 전화로 외할머니 이모네 가셨으니 들리지 말라고 하시기도 하고..

바로 청주로 방향을 잡습니다.

가는 길에 들리는 '강산리'

할머니 댁입니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노란색에 파란색 지붕의 농협창고 뒤에 뒷집이 바로 할머니댁입니다.

들어가니 할머니께선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저를 맞이해 주십니다.

안방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쉬워 하시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곧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섭니다.



아.. 근데 너무 할머니 뿌리치듯 나와서 그런가;;

100m도 못가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아;;

진짜..

결국엔 다시 할머니댁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오늘은 여기까지인건가..."

일단 다 젖은 저지와 쫄바지를 벗어서 빱니다.



아.. 근데 빨래 하고 나오니 또 비가 않오네요;;

망설이다가.. 다시 출발입니다.



17:12

창리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보은-청주 사이의 1/4를 왔습니다.

비 때문에 꽤나 좀 지체가 됐네요..



아까 쫄바지와 저지를 빨아버린 바람에;;

면민소매티에 노언더웨어 상태로 그냥 반바지를 입고 달립니다.

엉덩이에 감각이 아예 소멸됐는 지.. 그냥 이렇게 달려도 달릴만 하군요;;



17;44

미원에 도착했습니다.

10Km에 30분걸리네요.. 

혹시나 피로와 비 때문에 속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 데 정상적인 페이스입니다.

미원도 자전거 문화가 매우 활발한 지역인지라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길래

달려봅니다.



집에 가까워갈수록 짐들은 막장으로 치닫는군요..

물병들은 그냥 대충 쑤셔박고..

삼각대는 녹이 다 슬고.. 이젠 펼치기가 겁이 납니다;;

저 까만 비닐봉투는 아까 빨아버린 저지와 쫄바지입니다.



18:24

미원을 지나서 한시간뒤 청원군 가덕면 가덕초등학교 앞을 지나갑니다.

아.. 청주 16Km밖에 않남았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엉덩이가 문제를 일으켜버립니다.

패드 없이 계속 충격을 받으니까 또 근육이 뭉쳤나 싶네요..

하는 수 없이 가급적 안장에 앉지 않는 방침으로 달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뭐 집이 코앞인 지금 이런 고통도 아름답기만 할 뿐이지요.




셀프를 찍어보아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저 목장갑은 아까 비누로 빨았는 데도 저 모양이군요;;

이젠 정이 다 들었습니다.

목장갑 인정합니다. 

300원으로 30,000원을 호가하는 다운힐 전용 글러브의 역할을 다 해준듯 합니다.



19:02

드디어 청주 시가지에 도착입니다.

여기서 집까지는 걸어가도 40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여행의 막바지를 너무 정신없이 달리기만 해버린 것 같아서 조금 아쉽고

안타까운 느낌이 드네요..

저길 저 너머에 지금까지 달려온 수 많은 기억들이 하나되어 뭉쳐있는 것 같습니다.



애용하는 세차장에 들려서 피똥을 닦아주기로 합니다.

비가와서 그런지 세차장에는 아무도 없군요.

짐들을 해체하고는 BB, 허브,등을 조심해서 물을 뿌리고

어제 잘 썼던 물수건을 찾아내서 그걸로 물기를 제거해줍니다.

비누칠을 못해주는 게 아쉽군요..



깨끗해진 피똥입니다.

아무래도 돌아갈 때는 자전거라도 깨끗하게 금의 환향해야 하니까요.



집에 가기전 마지막..

이 여행의 마지막 셀프를 찍습니다.



19:56

집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고..

별탈없이 참 잘 왔는 데.. 뭔가 좀 허탈하네요.




현관에 들어가기전..

6월 11일날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이 현관을 나섰던 자신을 회상해봅니다.

그 동안 만난 사람들.. 만난 풍경들.. 만난 느낌들.. 고통들.. 즐거움들.. 외로움들..

그리움들.. 스릴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다는 느낌.

또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 여행을 마지막으로 나는 영영 '살아가지는' 그런 일상에 잠겨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도 생깁니다.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물과..

따뜻한 밥과.. 편안한 침대와 이불이 기다리고 있는 데..

나는 또 그런 일상에 길들여져 나 자신의 본성을 잊고 이런 근성들을 다 잊고

살아가게 될 것이 문득 너무나도 서글퍼지네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임을 저는 알겠지요.

마냥..

그저 마냥..

"일상=여행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하든.. 어찌 됐든 누가 뭐라고 하든..

그것은 나의 인생이고..

김정환의 전국반주는 끝이 났지만..

그것은 그저 제 인생의 작은 여행이 다른 새로운 여행으로 넘어가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그렇길 바라고.. 또 꼭 그럴 것입니다.

이 여행은 끝이 났지만..

인생이라는 길고도 커다란 여행을

저는 지금까지 달려왔고 또..

앞으로도 즐겁고 신나게 근성있게 달리고 느끼고 많은 사람도 만나면서..


언제나..

언제나..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아.. 정말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저임에 감사합니다.




주행거리: 164.34Km
주행시간: 9시간 05분 47초
평균속도: 18.06Km/h
최고속도: 57.88Km/h
누적주행거리: 1525.6Km
사용금액:약 25만5천여원




귀가해서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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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후


<여행기 복구를 마치고>


드디어 끝.


사진만 새로 올리면서 문장들을 붙여넣는 작업이었는데 일주일 정도가 걸린 것 같습니다.


여행기를 다시 읽어나가는 동안 그때의 기억들이 생생한데, 어느덧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집을 나설 때의 포부, 청주를 벗어나던 날, 천안에 도착한 날, 이모네 도착한 날, 대천해수욕장 교회에서 잠자리를 얻지 못한 일, 터널들을 지날 때의 공포, 처음으로 바다를 만난 순간, 금강하구둑을 만난 날, 군산에서 처음으로 야영을 한 날, 전라도의 평야를 달리면서 졸기도 하고, 정읍 내장산을 넘은 날, 담양 죽녹원, 담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곡성 지방의 FTA 반대 현수막들, 주암댐, 아름다운 도시 순천, 순천만, 벌교에서 결국 먹지 못한 꼬막, 보성에서 찾아간 엉뚱한 녹차밭, 쫀득쫀득하던 해남의 아스팔트, 완도에서 만난 일행들, 막내, 발업잔차형, 자전거를 배에 실은 순간, 일행이 생긴 날, 제주도에 들어가 함께 술을 마시고 텐트를 친 날, 변덕이 죽 끓듯 하던 섬 날씨, 우중 라이딩, 제주 중문 찜질방에서의 봉변, 제주도 1,100고지, 성산일출봉 야경, 배고파서 죽을 뻔 한 라이딩, 제주도를 떠나면서 만난 배인수형, 부산 관광 라이딩, 울산에서의 밤나들이, 영천 큰어머니댁, 옥산서원, 가산초등학교, 내 고향 보은


그 많은 일들을 내가 해냈다니 참 스스로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은 서글픕니다. 그때는 어서 빨리 성공해서 꼭 나머지 반바퀴를 돌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었거든요. 일단 지금으로써는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듯 합니다. 물론 하고 싶다는 의지는 여전하지만요 :)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는 참 뭐랄까 개념이 없다고 할까요? 유치하기도 하고, 재미있게 쓰려고 하다보니 누군가에게는 불쾌함을 주는 내용을 막 적은 부분도 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6년 전의 저는 복학을 앞둔 열혈의 청년이었고, 지금의 저는 30대의 문손잡이를 돌리고 있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격려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목표로 하던 임용고시에 연거푸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이래저래 뭔가가 캄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문장처럼, 서른 즈음이 된다면 생은 좀 더 또렷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더욱더 많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듯 합니다. 자격지심을 가질 동기가 되는 것은 무수히 널려 있지요. 과거에 했던 다짐이 굳을 수록, 과거의 기억이 더욱 영롱한 추억으로 빛날 수록 팍팍한 현실은 더욱 텁텁한 맛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합니다.


여행기를 쓸 당시에도 너무 급하게 집에 돌아온 것이 좀 아쉽기는 했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더욱 더 그렇네요. 그래서 여행기만이라도 그 피날레에 의미를 담뿍 담고자 꽤 신경을 썼더니 지금 읽어도 그 부분은 스스로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여행은 끝이 났지만..

인생이라는 길고도 커다란 여행을

저는 지금까지 달려왔고 또..

앞으로도 즐겁고 신나게 근성있게 달리고 느끼고 많은 사람도 만나면서..

언제나..

언제나..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아.. 정말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저임에 감사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제게 부끄러워 하는 것도 같고..

아마도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부러워 하는 것도 같습니다.

"정말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제가 한없이 부럽기에

그 부러움만큼 지금의 저는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겠지요


제 블로그 제목은 이 여행이 제게 준 다짐을 모티브로 지어졌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생을 살고 싶었으며,

실제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 문장은 언제나 제게 "즐겁게 살고 있냐"고 물어왔습니다.


이를테면, 6년 전의 제가..

그토록 행복했던 제가

지금의 제게 6년 후에도 행복한지를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고 부럽지만 지금의 저는 힘을 내어 그렇다고 대답하려 합니다.

그때처럼 변함없이 언제나 즐겁게 살고 있다고 말하려 합니다.

결국, 누구든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법이고,

남는 것은 생과 행복에 대한 의지, 나의 실존 뿐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


"언제나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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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07년 디씨인사이드 자전거 갤러리와 SLRclub 사진에세이 게시판에 연재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분들이 관심과 호응을 보내주셨습니다.

6년이 지난 후에 다시 확인해도 그 벅찬 격려에 마음이 뭉클합니다.

늦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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